故 공성훈·김건희 등 작가 포함
소장품 7점 등 작품 42점 선보여
콜라주·판화·아크릴 물감 표현
▲ 19일 오후 1시반 경기도미술관에서 개최한 <지도와 영토>전에서 김건희, 김정헌, 민정기 작가와 故공성훈 작가의 배우자가 기념사를 전하고 있는 모습.

“작가가 살아생전에 하셨던 '장소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성장한다'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경기도미술관이 신소장품들과 함께 커다란 지도를 그려냈다. 현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5인방의 작품들을 한 데 모아 현대 미술사를 연구하고 교육하고 전시한 모든 과정이 <지도와 영토>전으로 거듭났다.

지난 19일 오후 1시 30분,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린 이번 전시에는 故공성훈·정재철 작가를 비롯해 미술운동단체 '현실과 발언'의 창립 동인인 김건희, 김정헌, 민정기 작가의 작품들이 소개됐다. 원로 작가 3인방과 유가족들은 직접 전시 현장에 참여해 남다른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김정헌 작가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1980년대 같이 활동했던 동지들”이라며 “(고인이 된 작가들과는) 함께하지 못해 아쉽고 섭섭하다”고 말했다.

민정기 작가는 “경기도미술관이 작품을 소장하며 작가들의 작품이 넓은 공간에 소개되고, 작품을 연구하는 학예사들에 의해 작품의 깊이가 깊어지고 의미가 확장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경기도미술관이 소장한 7점의 작품을 포함해 작가와 유족이 소장한 35점을 추가로 확보해 모두 42점의 작품이 대중에 소개됐다.

▲ 19일 오후 1시반 경기도미술관에서 개최한 <지도와 영토>전에서 민정기 작가의 판화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의 모습.
▲ 19일 오후 1시반 경기도미술관에서 개최한 <지도와 영토>전에서 민정기 작가의 판화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의 모습.

이번에 선보이는 7점의 소장품은 경기도미술관이 수집한 작품 중 연구 필요성이 있는 작품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다. 각각의 작품들은 '영토'로 지정돼 작가의 예술 여정을 담은 '지도'를 완성했고, 이를 연구하고 기획하는 모든 과정까지 내포했다.

누군가는 신문을 찢어 콜라주를 하는 방식으로, 누군가는 아크릴 물감과 판화로 표현했지만 이들의 작품이 그린 여정은 역사 그 자체를 표현하고 있다. 김건희 작가의 <얼얼덜덜>은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기사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웃고 있는 여성 3명의 지면광고를 배치하며 1980년대 사회상을 해학적으로 드러낸다.

김정헌 작가의 <풍경8>은 매끄럽고 윤기 나는 비누를 쥔 아름다운 손과 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진 논과 농부를 대비시키며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946년 '해방둥이' 세대로 태어난 김 작가는 <후레쉬 민트는 모든 것을 녹색으로 보이게 한다-6·25의 기억>(1984) 작품을 통해 한국 전쟁의 잔허와 소비문화의 부정적 면을 동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일상의 단면들을 판화에 담은 민정기 작가의 작품들은 1980년대 초기 매체 실험을 진행하던 작가의 의도가 드러남과 동시에, 관람객들로 하여금 그 시절의 향수와 감상, 애정과 소망 등 다양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이번에 경기도미술관 소장품으로 소개된 <사람들>은 낱장 판화 작품 11점을 책 형태로 묶어 대중적인 공간과 배경을 담아냈다.

故정재철 작가의 <제3차 실크로드 프로젝트 루트맵 드로잉>(2010)은 2004년부터 진행된 <실크로드 프로잭트>의 마지막 여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터키, 그리스, 불가리아, 세르비아, 헝가리,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런던 등을 거치며 폐현수막을 활용한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그는 신도시 개발을 위해 잘려진 나무로 <무제>, <정물>과 같은 조각 작품들도 남겼다.

개를 소재로 10년에 걸쳐 <개> 시리즈를 그려낸 故공성훈 작가의 <벽제의 밤-개>는 평면성을 통해 대상을 드러낸다. 작가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개의 이미지는 빛과 어둠을 활용해 표현됐다. 작가가 찍은 영상 아카이브로도 관람할 수 있어 작품을 이해는데 도움을 줬다.

전승보 경기도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경기도미술관이 수집한 작품의 다양한 가치와 연구 방식을 제시, 소장품의 활용을 다층적으로 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다양한 연구가 관람객들에게 현대미술을 즐겁게 감상하고 탐험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