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요코하마. 그리고 오늘은 인천유나이티드 F.C가 창단 20년 만에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를 치르는 날이다. 상대는 J리그 선두를 다투고 있는 일본의 강팀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설레는 마음에 자는 둥 마는 둥, 새벽에 집을 나섰다. 공항부터 파랑검정 유니폼이 심심찮게 눈에 띠는 걸 보니 원정 응원단 규모가 상당할 것 같았다. 들리는 이야기론 6백 명 넘는 팬이 원정을 떠난다고 하니 나만 유난스러운 건 아닌가 보다. 창단 때부터 아빠 손잡고 경기장을 찾았던 아들 녀석도 이제 현장 응원팀이 되어 함께 원정길에 올랐다.
녀석도 흥분되기는 마찬가지. 비행기 탈 때만 해도 마냥 즐거운 모습이더니 이곳에 도착하면서부터 무언가 비장한 표정이다. 경기 2시간 전, 사전 공지된 집결지 신요코하마역 서쪽 광장은 인천 팬들로 가득한 것이 흡사 도원역 광장처럼 보였다. 여기서부터 경기장까지 행진이란다. 깃발을 앞세우고 30분 남짓 걸었나 보다. 멀리 웅장한 닛산스타디움의 뼈대가 보인다. 2002년 한일월드컵 결승전이 열렸던 경기장답게 그 규모가 상당하다. 입구에 다다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응원가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주변에 모여 있던 요코하마 팬들은 물론, 지나던 시민들까지 신기한 듯 사진을 찍어댔고, 수백 명에 이르는 우리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그 기세 그대로 경기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잘 정돈된 새파란 잔디. 지난 주말 처참하게 패인 인천 경기장의 잔디를 보고 온 탓인지 양탄자 같은 그라운드가 그저 부럽기만 하다. 잔디 문제는 해마다 반복되고 있지만 어째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년에는 좀 나아지려나? 평일 오후 경기인지라 홈 관중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목소리에서 밀리지 않고 해볼 만 할 것 같았다.
선수단이 몸을 풀기 시작하면서 응원단도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았던 맞은편 요코하마 응원단이 갑자기 불어나더니 상대편 응원소리가 우리를 압도하는 것 같았다. 경기가 시작되고 다들 목소리에서 만큼은 질 수 없다는 듯 온 힘을 다해 응원가를 불렀다. 20년 간 기다려왔던 시간이어서 그런가. 군데군데 눈물을 훔치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양 팀 모두 두 골씩 주고받은 채 전반전이 끝나자 인천에서 중계를 보던 지인이 문자를 보내왔다. “응원은 우리가 이겼어” 응원 소리가 어지간히 컸나보다. 모두가 목이 터져라 응원한 덕분인지 경기 결과도 4대2 승리.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 그것도 원정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것이다. 옆에서 누군가 호기롭게 말한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결승까지 가보자” 그러게 안 될 것도 없지 않은가.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하던 그곳, 아시아로 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 글·사진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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