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字·한글, 새의 양날개…우리 민족 글자다
▲ 韓江이 흐르는 韓國은 찬란하고(倝) 위대한(偉) 아침(朝)의 나라다. /그림=소헌
▲ 韓江이 흐르는 韓國은 찬란하고(倝) 위대한(偉) 아침(朝)의 나라다. /그림=소헌

韓國現代史(한국현대사)는 현재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역할과 장차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측면에서 그 어느 시대보다 중요한 역사관을 갖는다. 한국현대사는 광복(1945.8.15)을 기점으로 보고 있다. 이때로부터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과 소련에 의한 분할정책으로 완전한 자주국가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그들이 획정한 '3·8선'으로 인해 민족이 분단되었고, 남·북은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게 되었다. 얼마 후 한강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한국전쟁(1950)을 거치게 되었으며, 양측은 오늘날까지 극한 적대심으로 대치하고 있다.

이승만 정권 말기 4월혁명(1960)을 거쳐 유신체제로 대변되는 박정희 정권이 흘러갔다. '서울의 봄'을 무기력화 시키며 신군부(1980)가 들어섰고,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그리고 참여정부 이후 별도의 지칭 없이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를 지나 윤석열 정부가 진행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남쪽만의 정부가 수립된 지 70여 년이 흐른 오늘날 한국사회에 있어 가장 큰 폐해로 지적되는 좌우 정치세력의 이념갈등은 동서뿐만 아니라 세대 간 깊은 골을 구축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민주화와 통일에 대한 열망 속에 식민사관을 극복해 나가며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룸으로써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된 점은 눈을 비비고 볼 정도로 매우 놀랄 만하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였지만 이제 옛말이 되었다. 현대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빠른 變動(변동)이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동시에 가속(페달)을 밟으며 변한다. 필자가 다루고자 하는 논제는 '한국현대사 20년'이다. 구체적으로 정한다면 2001년 이후가 될 것이다. 한 해에 있었던 역사를 함축하여 한 편의 지면에 얹을 것이다. 글의 소재는 교수신문에서 발췌하고자 한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2001년부터 교수신문에서 그 해를 표현하고 상징하는 四字成語(사자성어)를 선정하여 연말에 공표한다. 한국에서 해당 연도에 있었던 정치·경제·사회 문제와 주요한 사건 그리고 시대상황에 부합되는 견해들을 압축하여 적절히 표현하였다. 다만, 대부분 부정적인 뜻을 지닌 것들이 선정된 측면이 많은데, 이는 사회의 어두움을 개선하려는 경향이 컸음을 인지한다. 그래서 연초에 긍정적인 뜻을 담은 '희망의 사자성어'를 선정하기도 했다(2006~2017). 하지만 매년 희망과 절망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세월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韓 한] [한국 / 한민족]

①'조선'을 뜻하는 朝(조)의 앞부분은 풀숲(屮/屮)을 뚫고 떠오르는 해(日)이기에 '아침 조'라 부른다. ②韋(가죽 위)에서 口(구)의 위아래에 있는 글자는 㐄(걸을 과)다. 두 발이 서로 등지거나 어긋난 모양이다. 가죽옷(韋)을 입은 두 병사가 성(口) 주위를 돌며(㐄+㐄) 지킨다. ③倝(햇빛 간.생략형)과 韋(지킬 위.衛생략형)가 합쳐진 韓(한)은 밝고 위대한(偉위) 아침의 나라다.

 

韓江(한강)이 옳고 漢江(한강)은 그르다. 韓拏山(한라산)이 옳고 漢拏山(한라산)은 그르다. 韓牛(한우)가 옳고 漢牛(한우)는 그른 것과 같은 이치다. 韓字(한자)는 한국의 글자이고 漢字(한자)는 중국의 글자다. 지금 우리는 '新문맹시대'를 살고 있다. 안 된다. 韓字와 한글은 새의 양날개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민족의 글자다. 우리글 한자와 한글을 통하여 수준 높은 문자생활을 영위하며 바른 역사를 세우자.

▲ 전성배 한문학자·민족언어연구원장·<수필처럼 한자> 저자.
▲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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