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끊길 위기 전통예술…“유파 인정해 되살려야”

경기민요, 보유자 3인에 전파
문화재청 안비취 유파만 인정
타 유파 반발…행정소송 예고

전문가 “계보 부정 다양성 훼손”
“최소한 이의 제기 제도 필요”
무형문화재 전승제도 정비 촉구
▲ 경기민요 전승자 대표단원들이 지난 6월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앞에서 경기민요의 유파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사진제공=경기민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비상대책위
▲ 경기민요 전승자 대표단원들이 지난 6월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앞에서 경기민요의 유파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사진제공=경기민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비상대책위

문화재청의 경기민요 보유자 인정을 놓고 연일 시끄럽다. 문화재청이 최근 돌연 경기민요 유파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다. 전승자들은 유파를 인정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앞으로 유파 관련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문화재청이 무형문화재 전승정책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기민요, 보유자 3명이 나눠 전승

경기민요는 서울과 경기에서 주로 불리던 전문 예능인의 노래로, 이 가운데 '경기12잡가'는 유산가·적벽가·제비가·소춘향가·선유가·집장가·형장가·평양가·십장가·출인가·방물가·달거리 등 12곡이다.

1975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경기민요는 2000년대 초반까지 안비취(본명 안복식), 묵계월(본명 이경옥), 이은주(본명 이윤란) 등 보유자 3인 각각의 계파로 전승됐다.

안비취 유파는 유산가·제비가·소춘향가·십장가를, 묵계월 유파는 적벽가·선유가·출인가·방물가를, 이은주 유파는 집장가·평양가·형장가·달거리를 전승 교육해왔다.

전승자들도 서로 간 전수 범위를 인정해왔다. 유파는 경향과 방식이 비슷한 사람이 모인 무리를 뜻한다.

 

▲경기민요 갈등 시작, 유파 불인정

경기민요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 5월 문화재청이 안비취 유파인 김혜란·이호연 전수교육보조자를 경기민요 보유자로 인정 예고하면서 시작됐다.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는 지난 6월 29일 김혜란·이호연 명창을 경기민요 보유자로 인정했다.

문화재청이 안비취 유파로 분류되는 명창들만 보유자로 복수 인정하자 다른 유파 전승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이어졌다. 이들은 행정소송도 예고하고 있다.

이들은 안비취 유파의 경우 국가무형문화재 이춘희 보유자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후계 보유자를 시급히 지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상대적으로 묵계월 유파는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묵계월 선생이 2014년 5월 2일 작고했고, 이은주 유파 보유자였던 이은주 선생도 2020년 11월 2일 작고해 후계 보유자 지정이 상대적으로 시급한 실정이다.

10여 년 전에도 경기민요 유파 논란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재청은 2009년 한국국악학회에 연구 용역을 맡겼고, 그 결과물은 제4대 무형문화재위원장을 맡은 김영운 위원장이 작성한 '중요무형문화재 개인종목(음악분야) 전승 활성화 학술연구용역 결과보고서'이다.

결과보고서에 ▲전승(사승) 계보가 다를 것 ▲악곡 구성이 다를 것 ▲리듬·선율·주법 등 음악적 요소에 명백한 차이가 있을 것 등의 기준을 적용했을 때 경기민요에 '유파'는 존재하지 않으며, 향후에도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문가들 “유파 불인정은 전통예술 말살”

지난달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무형문화재 제도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일제히 경기민요 종목의 유파를 인정하지 않는 근거가 된 연구용역 결과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민요 전승자들의 주장과 같다.

김정희 서울대학교 음악학 박사는 “'유파'는 판소리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경기잡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며 “판소리도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스승으로부터 갈라져 나왔을 것. 한 가닥에서 분화돼 이제 겨우 형성되기 시작한 '계보'를 부정한다면 경기잡가의 '다양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김새나 요성 등 '목 쓰는 것'과 관련된 연주자의 개성적 표현의 차이가 다양성을 담보하는 핵심 요건”이라고 했다.

경기민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계보와 유파는 전통 예술에 있어 근간”이라며 “경기민요 또한 그 계승을 위해 곡목별, 유파별로 전승교육사가 지정됐고 엄연히 다른 소리로 전승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데 문화재청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대가 끊길 위기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 법·제도 정비 필요

현장에서는 전통음악을 문화재적 차원에서 다루는 문화재청은 당연히 유파를 최우선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파가 다르면 음악이 다르기 때문이다.

손태도 호서대학교 교수는 2016년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제도에 있어 유파 인정의 필요성'이란 논문을 통해 “무형문화재에 있어 유파를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종목에 있어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일정한 일가를 이룬 성취들을 인정한다는 뜻”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무형문화재 제도에 있어 '유파'는 중요하다”며 “문화재청은 무형문화재 제도운용에 있어 지금과 같은 유파를 없애는 작업을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근래에 없던 유파들을 지금이라도 빨리 되살려야 한다"고 했다.

장희진(가로재 법률사무소) 변호사도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의 구성과 심의·의결에 있어 공정성 확보 및 전문성 문제를 제기하며, 무형문화재위원회 추천위원회를 둬 객관성과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 변호사는 “나아가 무형문화재 보유자 등 인정에 대해 이해관계자 혹은 최소한 당사자가 문화재청 등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문화재청 스스로가 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제도에 대한 획기적인 개혁을 먼저 고민하고, 새로운 안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지혜 기자 p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