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재일동포를 거론할 때면 파란만장한 역사적 기억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 수나 삶의 역정 등을 미루어 그들은 아주 큰 '울림'을 주는 존재다. 재일교포는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 국적자와 그 자손을 통틀어 말한다. 이들은 대개 생계를 위해 건너갔거나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강제로 끌려갔다.

그들은 일본 사회에서 온갖 차별과 억압을 받으며 고통스런 삶을 살았다. 더구나 1923년 관동대지진 때는 '조선인들이 방화·약탈을 일삼으며 우물에 독을 탔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져 무차별 학살을 당하기도 했다. 그때 조선인 6천여명이 살해됐다고 알려진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영주권을 얻으려는 교포들은 국적을 '한국'으로 선택했지만, 정치적으로 북한을 지지하던 이들은 '조선'을 유지했다. 재일한국인 사회는 친남한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친북한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로 나뉘어 심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재일한국인이 결정적으로 늘어난 시기는 강제로 조선인을 끌고가던 1930년대 말. 일제는 당시 150만여명의 조선 노동자를 강제 징용했는데, 1945년 무렵엔 240만여명으로 급증했다. 이 수치는 당시 조선 전체 인구의 10%에 달할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재일동포는 82만여명에 이른다.

재일한국인은 일본인 기피 일을 도맡았다. 대부분 위험하고 불결한 노동이었다. 잡역부·일용·탄광·토목 등으로 밑바닥 생활을 했다. 임금도 몹시 열악해 빈민층에 가까운 삶을 꾸리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조선인들은 악착같이 일하면서 돈을 모았고, 심지어 고국의 가족에게 송금을 했다고 전해진다. 극심한 민족 차별에도 꿋꿋이 버텨낸 장한 이들이었다.

지난 8월29일 중구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선 뜻깊은 전시회가 열렸다. '역경을 딛고 우뚝 선 조선인, 자이니치, 다시 재일동포' 특별전이다. 올해 관동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재일동포의 아픔과 기억을 돌아보려고 마련됐다. 오는 12월3일까지 진행되는 전시는 재일동포 궤적 찾기부터 시작한다. 1부 프롤로그에선 재일동포가 일본열도에 정착한 계기, 2부 '식민지 조선인에서 내지의 선인으로', 3부 '조선인에서 자이니치로', 4부 '재일동포, 열도에서 우뚝 서다'로 이어진다.

재일동포들은 일제 식민 지배와 한반도 분단 등 쓰라린 역사의 굴곡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식민 조선의 가난을 피해서, 또는 징용으로 끌려간 후 제도·민족적 차별과 싸우며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런 이들을 기억하고 삶의 흔적을 들여다보는 전시가 많은 성과를 거두길 기대한다.

▲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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