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송학동 일대는 '개항장 누리길'로 불린다. 인천 개항(1883년) 후 일제 때 조성된 근대 문화 유적지가 다양하게 존재해서다. 바로 옆에 차이나타운과 동화마을 등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많아 당일 여행 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개항장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883∼1884년 사이 맺은 조계 조약이 눈에 띤다. 조선과 미국·영국·청국·일본·독일 대표 간 체결한 '인천제물포각국조계장정'(仁川濟物浦各國租界章程)이다.
각국 조계는 송학동·송월동 등지에 14만평 규모로 형성됐다. 개항장 명성에 걸맞게 각국 대사관과 관저 등 대규모 근대 건축물이 들어섰다. 제물포 조계지는 조선 최초의 '근대적 계획 도시'로 여겨진다. 각국 조계엔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 거주했고, 이들은 공동 이익을 위해 자치기구인 신동공사(紳董公司)를 세웠다. 여기서 사교를 목적으로 클럽을 짓기로 합의했는데, 바로 현존하는 제물포구락부다. 1901년 6월 문을 연 클럽 내부엔 바·사교실·도서실·당구대 등이, 실외엔 테니스 코트가 있었다.
당시 개항장 내 서양인은 80여명에 불과했지만, 이들은 대개 외교관·세관직원·통역사·선교사·상인 등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한 유력 인사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총독부는 1914년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모든 조계를 철폐했다. 인천의 조계들은 인천부에 편입됐고, 상당수 외국인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
송학동의 경우 거류지 시대에 서양인 별장이 많은 일급 주택가였다. 지명은 자유공원 내 소나무에 학(鶴)이 있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자유공원은 1888년 조성된 국내 최초 서구식 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을 비롯해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과 야조사·석정루·연오정 등을 갖추고 있어 시민 휴식처로 이용된다.
송학동 1가 11의 2 일대가 개항장을 품은 역사산책 공간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인천시에 따르면 2021년 중단됐던 '개항장 역사산책 공간 조성사업 지구단위계획 실시설계용역'을 재개한다. 이곳엔 193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도시문화주택 형태의 적산 가옥과 소금 창고 건물이 아직 남아 있다. 1920년대 일본은 화약 원료로 쓰려고 주안·소래염전에서 생산한 소금 일부를 여기에 보관했다고 전해진다. 시는 시민들이 인접한 제물포구락부·자유공원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활용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19세기 말 개항 이후 우리나라 근·현대 산업화의 물꼬를 튼 곳이 중구다. 이런 중구 내 개항장 곳곳을 둘러보며 그 이야기와 감성을 즐기면 어떨까? 송학동에서 '시간 여행'을 떠나 '모든 길은 인천으로 통한다'를 누려보자. 무엇을 남길지 마냥 기다려진다.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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