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선 최첨단 치안 시스템 '프리크라임(Pre-Crime)'이 등장한다. 범죄가 일어날 시간과 장소, 범행할 사람을 예측한 뒤 이를 바탕으로 미래 범죄자들을 체포하는 시스템이다. 2054년 미국 워싱턴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프리크라임은 완벽한 치안 유지에 기여하며 시민들이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

최근 국내에서 선량한 시민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 영화가 머릿속에 불현듯 떠올랐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일종의 테러와 같은 '묻지마 범죄'를 막을 방법이 없는지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요즘이다.

'서울 신림역 칼부림 사건'을 일으킨 조선(33)은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골목에서 A(22)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이어 30대 남성 3명을 공격해 중상을 입히기도 했다. 검찰은 조선의 잔혹한 범행에 대해 “현실과 괴리된 게임 중독 상태에서 불만과 좌절감이 쌓여 범행을 저질렀다. 의도적으로 젊은 남성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이 공격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22)은 이달 3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AK플라자 백화점 앞에서 보행자들을 향해 차량을 돌진한 뒤에 차에서 흉기를 들고 내려 시민들을 향해 마구 휘둘렀다. 그의 범행에 1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경찰은 2020년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은 최원종이 최근 3년간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다가 망상에 빠져 범행에 이르렀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경찰청은 사상 처음으로 '특별치안 활동'을 선포했다. 특별치안 활동이란 일상적 치안 활동으로는 치안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될 때 경찰청장 재량으로 경찰 인력과 장비를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조치다. 무엇보다 두 사건은 “대한민국은 범죄로부터 안전한 나라”라고 굳게 믿어왔던 국민 인식에 균열을 일으켰다.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됐고, “나도 묻지마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 젊은 남성들이 온라인 쇼핑몰에서 호신용품을 찾아보는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11번가 통계를 보면 신림역 인근에서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인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3일까지 12일간 호신용품 거래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2%, 직전 주(7월9∼21일) 대비 224% 증가했다. 여성 주문자는 168%, 남성 주문자는 263% 늘었다. 지난 7일 기준 네이버 쇼핑 트렌드 차트 톱10에 호신용품(2위)을 비롯해 호신용 스프레이(3위), 삼단봉(4위), 전기충격기(7위)가 이름을 올렸다는 보도도 나왔다.

현 치안 시스템만으로는 시민 안전을 완벽하게 지켜낼 순 없는 걸까. 아직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도 범죄를 사전에 알아내 미래 범죄자를 붙잡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전히 경찰이 직접 현장을 돌아다니며 범죄를 예방하고 사건이 발생하면 범죄자를 추적해 잡아야 하는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서 경찰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제복 차림의 경찰관이 거리를 활보할수록 당연히 범행 욕구도 수그러들 수밖에 없다. 간혹 범죄 예방 순찰 중 수상한 사람을 발견해 가방 속 흉기를 찾아내는 경찰관 특유의 '예리한 촉'은 프리크라임 못지않다. 시민들이 묻지마 범죄에 희생돼 삶을 마감하는 일이 없도록 두 사건이 대한민국 치안 역량을 한 단계 더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박범준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