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는 지난 2020년 일제 강점기 여자 근로정신대 구술 기록집 '빼앗긴 나라, 잊혀진 존재'를 펴냈다. 인천지역 강제동원 피해 관련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발간했다. 기록집에 따르면 인천에 적을 둔 강제동원 피해자는 4802명에 달하는데, 경기도 강화(현 인천시 강화군)가 본적인 피해자만 5830명이다. 인천에서만 일제에 의해 무려 1만여명이 끌려갔다.

기록집은 여러 면에서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근로정신대를 일본군 위안부처럼 여기는 탓에, 여성 피해자들이 나서길 꺼려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시는 앞서 2016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여성 근로자 지원 조례'를 제정해 그해부터 매달 생활보조비와 의료비 등을 지원한다. 그 무렵 지원 대상자는 7명이었으나, 고령으로 인한 사망으로 현재 3명으로 줄었다.

더불어민주당 허종식(동구미추홀구갑) 의원실이 1944년 동구 송현공립국민학교(현 인천송현초) 1회 졸업생 여학생 13명이 근로정신대로 일본 본토에 강제동원됐다는 기록을 찾아냈다고 최근 밝혔다. 일제 강점기 발행 신문과 국가기록원 보유 자료 등을 살펴 추가 강제동원 피해자를 파악했다고 한다. 일제가 어린 초등학생까지 강제노역으로 끌고간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가 1944년 7월4일자 3면에 '전별금 헌납 정신대 미담'이란 제목으로 실은 기사를 보면, '인천부의 여자 근로정신대 모집에 따라 송현국민학교에서 졸업생 27명이 응모해 13명이 합격했다'고 나온다. 같은 날 매일신보가 게재한 '경성·인천 출신 정신대 합동장행회'란 제하의 기사엔 송현초 학생들이 함께 동원된 인천의 다른 학교 학생들과 시가행진을 한 후 일본으로 떠났다고 한다. 이전부터 인천의 10대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갔다는 점을 입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송현초 여학생들의 강제동원 사실은 당시 교사였던 일본인 와카타니 노리코씨 '고백'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담임을 맡았던 학급의 여학생들을 일본으로 보냈다면서 그때 제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각계에 도움을 청했다. 그가 94세였던 2019년이었다. 그런데 인천에 강제동원과 관련된 자료들이 부족해 결국 제자들을 찾지 못했다.

인천은 이 말고도 일제의 군수공업지대로서 수많은 강제동원 피해자를 낳았으리라. 다만 지금은 일제를 겪은 이들 중 상당수가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 실체를 파악하기엔 힘들어 보인다. 그래도 일제의 강제동원 실태에 대한 후속 연구를 꼼꼼히 진행해 '진실'을 꼭 밝혔으면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경구도 있지 않은가.

/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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