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 1955, 캔버스에 유화물감, 6.5×16.5㎝, 국립현대미술관.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이 장욱진 최초의 가족도인 1955년작 ‘가족’을 공개했다.

1964년 반도화랑에서 개최된 장욱진 첫 개인전에서 일본인 개인 소장가에게 판매된 후 행방을 알 수 없었던 ‘가족’이 9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2023년 9월14일~2024년 2월12일)을 통해 60년 만에 최초 전시된다.

‘가족’은 생전 30여 점 이상의 가족을 그린 장욱진이 항상 머리맡에 걸어둘 만큼 애착을 가졌던 작품이자 생애 첫 돈을 받고 판매한 작품이다. 작품값으로 막내딸에게 바이올린을 사준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 〈가족도〉, 1972, 캔버스에 유화물감, 7.5×14.8㎝,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당시 일본인 시오자와 사다오(塩澤定雄, 1911∼2003)에게 판매된 이 작품에 대한 아쉬움으로 1972년 ‘가족도’(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를 다시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장욱진 연구자들의 궁금증을 일으켜왔다.

이 작품을 두고 화가의 부인 고(故) 이순경 여사는 “조그마한 가족도였는데 두고두고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고 언급했고, 큰딸 장경수 역시 이 작품을 장욱진의 대표작으로 꼽았던 바 있다.

생전 장욱진과 깊은 친분을 유지했던 김형국 전 서울대 교수는 1991년 이 그림의 행방을 찾으려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작품의 현존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지난 60년간 오직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 몇몇의 기억 속에만 남아 구전으로 전해오던 장욱진의 ‘가족’은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장욱진’ 회고전 기획을 계기로 발굴됐다.

전시의 기획을 맡은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작품의 행방을 찾으러 소장가 시오자와 사다오의 아들인 시오자와 슌이치(塩澤俊一)부부를 찾아가 일본 오사카 근교에 소재한 소장가의 오래된 아틀리에를 방문했다.

장욱진의 ‘가족’은 일본의 미술품운송회사 담당자들이 한쪽에서 작품을 찾는 동안 배원정 학예연구사가 낡은 벽장 속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손바닥만 한 그림을 직접 찾아내며 극적으로 발견됐다.

당시 현장에서는 작품의 행방을 몰랐던 시오자와 부부뿐 아니라 주일 대한민국대사관 한국문화원의 하성환 팀장과 미술품운송회사 직원들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는 후문이다.

발견된 작품은 평생 가족 이미지를 그린 장욱진 가족도의 전범(典範)이 되는 그림이자, 최초의 정식 가족도라는 측면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그림 한가운데에는 작품 제작연도 1955와 장욱진의 서명(UCCHINCHANg)이 적혀있다. 화면 한가운데 자리한 집 안에는 4명의 가족이 앞을 내다보고 있으며, 집 좌우로는 나무가 있고, 두 마리의 새가 날아가고 있다. 대상이 군더더기 없이 짜임새 있게 배치돼 장욱진의 조형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그의 가족도 중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와 아이들만이 함께 그려진 유일한 사례라는 점도 의미 깊다. 또 장욱진 유족의 증언에 따르면 작품의 액자 틀을 월북 조각가 박승구(1919~1995)가 조각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울러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작품이 전시 출품뿐 아니라 소장품으로서 작가의 고국 한국에 돌아올 수 있도록 소장가를 설득했고, 소장가는 흔쾌히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구매계약서에 서명했다.

작품의 존재를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일본 내 권위 있는 서예가이자 예술원 회원인 다카키 세이우(高木聖雨) 선생은 소장가 시오자와 슌이치 선생에게 직접 붓글씨로 쓴 편지를 보내 ‘장욱진’회고전에 ‘가족’을 출품해줄 것을 요청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9월 개최되는 ‘장욱진’ 회고전을 앞두고 화가의 장남 장정순은 “대학생 시절, 반도화랑에서 시오자와 사다오씨가 작품을 구매할 때 현장에 있었다. 그가 준 명함도 기억이 난다”며 “그분의 아들에게 국립현대미술관이 작품을 다시 구매해왔고, 작품을 다시 만나게 된다니 감회가 새롭다”며 소회를 언급했다.

장녀 장경수는 “어렸을 적 아버지가 그리신 나무의 우둘투둘한 질감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만져 보았던 기억이 나는데, 다시 만나니 눈물이 난다”고 했다. 막내딸 장윤미는 “당시 10살이었는데 혜화국민학교 합주단이었다. 아버지가 사준 그 바이올린으로 여러 곳에서 연주한 기억도 생생하다. 너무나 새롭고 감격스럽게 다가온다”고 소감을 전했다.

약 6개월간 각고의 노력 끝에 소장품이 된 장욱진의 1955년작 ‘가족’은 보존처리 과정을 마친 후 오는 9월14일부터 개최되는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에 출품돼 관람객들을 맞이할 예정이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