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병 대령 박정훈 수사단장 입장문./사진=해병 박정훈 대령 법률대리인 제공, 연합뉴스

경북 예천군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고(故) 채수근 상병 사고를 조사하다가 보직 해임된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9일 "사건 발생 초기 윤석열 대통령께서 엄정하고 철저하게 수사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셨고, 저는 대통령의 지시를 적극 수명했다"고 밝혔다.

이날 자신의 변호인을 통해 공개한 입장문에서 박 대령은 "수사 결과 사단장 등 혐의자 8명의 업무상 과실을 확인했고,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내용을 해병대 사령관·해군참모총장·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대면 보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방부 장관 보고 이후 경찰에 사건을 이첩할 때까지 장관에게서 이첩 대기 명령을 직·간접적으로 들은 사실이 없다"며 "다만 법무관리관의 개인 의견과 차관의 문자 내용만 전달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해병대 수사단장으로서 고 채수근 상병 사망 사고를 수사함에 있어 법과 양심에 따라 수사하고, 그의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하겠다는 유가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 30년 가까운 해병대 생활을 하면서 군인으로서 명예를 목숨처럼 생각하고 항상 정정당당하게 처신하려고 노력했다"며 "정의와 정직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해병대 정신을 실천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변호사에 따르면 박 대령은 현재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형사 입건된 상태로, 해병대 수사단장에선 보직해임 됐으며 오는 11일 국방부 검찰단의 2차 조사를 받는다.

변호사 측은 "박 대령은 해병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지휘부에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며 "경찰에 이첩할 자료를 수정해버리면 유족부터 반발하고, 모든 비난이 해병대를 향할 것이 자명한 데 그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군은 고 채 상병 사건 조사 결과를 경북경찰청에 넘기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사건을 이첩한 박 대령을 보직에서 해임하고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했다.

박 대령 측에 따르면 박 대령에게 사건 이첩 보류 명령을 통보한 사람은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 유 법무관리관은 박 대령과 5차례 이상 통화하면서 '최초 보고서에서 죄명을 빼고 혐의자 및 혐의사실을 뺄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조사 자료에는 채 상병이 소속된 해병대 1사단 임성근 사단장 등 8명에 과실치사 혐의 등을 적용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이에 박 대령은 유 법무관리관에게 "수사 결과 사단장 등에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것을 유가족에게 이미 설명했는데, 인제 와서 사단장 등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빼는 것이 문제 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이에 국방부 검찰단은 집단항명 수괴 혐의에 이어 직권남용과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 혐의도 추가로 적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 대령 변호인 측은 "박 대령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 집단항명의 수괴라고만 돼 있고 누구의 명령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복종하지 않았다는 사실 적시가 전혀 없다"며 "직접 증거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국방부는 신범철 차관이 이번 사건에 관여했다는 한 언론 보도에 대해 법적 조치를 거론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 언론은 신 차관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임성근) 사단장은 빼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는데, 이에 국방부는 출입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신 차관은 해병대 사령관에게 고 채수근 상병 사망 사고와 관련 문자를 보낸 적이 없음은 물론이고, 특정인을 언급한 바 없다"며 정정보도 요청과 함께 법적 절차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놓고 국방부가 고 채 상병 사건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려 했다는 논란이 점점 커지며 해병대 수사담당자와 언론에 '법적 대응'을 통해 재갈을 물리려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노유진 기자 yes_ujin@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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