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문화 비평지, 출발·목적지는 모두 '인천'

인천문화재단 2007년 부터 발간
창간호 '아시아-대중-문화' 특집
인천 모인 한·일·화류…성찰 매체

플랫폼 비평상, 당선작 통찰력 우수
예산 부족 탓 6회까지 배출  안타까움

2015년 3·4월 50호부터 웹진 발행
55호 이후 1년 휴간…결국 폐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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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전문비평지 '플랫폼' 펼친 모습. 맨 오른쪽이 2007년 1·2월 창간호.

인천에 '아시아 문화 비평지'가 있었다. 인천문화재단이 2007년 1·2월호부터 격월간으로 10년 가까이 발행했던 <플랫폼>.

<플랫폼>은 영어로 쓰면 'Platform'이다. 기차를 타고 내리는 공간이기도 하고, 자유로운 토론이 오가는 발언대이기도 하다. <플랫폼>은 공간적으로는 인천이나 우리나라를 넘어 아시아로까지 그 범위를 넓히고, 그 아시아지역의 문화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다. <플랫폼>은 그러면서도 늘 '인천'을 잊지 않았다. 인천은 출발점이기도 했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목적지기도 했다.

통권 1호인 2007년 1·2월호 창간호는 기획논단, 특집, 비평공간 등 세 가지로 나뉘어 짜였다. 특집 코너의 주제는 '아시아-대중-문화'였다. '지역 문화 연구의 동향과 전망', '젊은 시청자층의 취향 변화, 추리와 웃음', '지역 간 실천 중의 문화 혼종성' 등 세 편의 글을 실었다.

▲ 2007년 1·2월 창간호.<br>
▲ 2007년 1·2월 창간호.

'지역 문화 연구의 동향과 전망'은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썼다. 영화를 놓고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지역이나 국가 간 경계를 허무는 흐름을 파고들었다. 민족주의,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경계를 교란하면서 동시에 지역과 지역을 가로지르는 영상 문화의 의식적 무의식적 작동 논리를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게 하였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가 쓴 '젊은 시청자층의 취향 변화, 추리와 웃음'은 젊은 층이 공중파 드라마의 본방을 시청하지 않으면서 빚어지는 일일극과 주말극의 노후화 문제를 다루었다. 젊은 층이 시청자층에서 빠지면서 드라마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중장년층을 고려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거다.

'지역 간 실천 중의 문화 혼종성'은 동경예술대학의 모오리 요시타카(毛利嘉孝) 교수가 썼다. 모오리 요시타카 교수는 혼종적(hybrid) 생산물로서의 '한류', 음악의 혼종성:일본 대중음악의 기원, 언더그라운드에서의 개인 네트워크 시대 등으로 나누어 국경과 정치를 오가는 음악의 문화적 가치를 따졌다.

모든 간행물은 창간호에 그 지향점이 담겨 있다. '아시아-대중-문화'를 주제로 한 특집 이외에도 '문화론, 오늘의 지형도'란 타이틀의 기획논단에 실린 '기획의 변:문화론의 오늘을 말함'(강경석)이나 '현 단계의 자본주의와 삶 문화'(정남영) 등 두 편의 글도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14편의 글을 담은 비평공간은 그 무대가 드넓다. '『북조선 탄생』 그리고 북핵'(박명규), '일본 소설, 그 갈라진 혀'(권여선), '한국어로 묘사된 동남아시아의 맨얼굴'(노영순) 등은 그야말로 아시아 전역으로 무대를 확장한다. '청관(淸館) 혹은 차이나타운'(김영경), '만국공원의 복원, 초라한 관광주의와 부자유한 자유 사이에서'(윤세진), '화가로서의 유희강'(강하진) 등은 읽는 이로 하여금 인천이 확실한 <플랫폼>의 유턴(U-turn) 목표 지점임을 확인하게 한다.

이처럼 창간호의 내용을 제목 위주로 살펴본 것만으로도 <플랫폼>이 첫발을 내디디면서 울린 기적 소리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플랫폼>의 창간호 발행은 인천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문화판에 일종의 청량제 같은 느낌을 줬다고 할 수 있다. 광역 기관이기는 하지만 지역 문화재단 차원에서 만드는 잡지가 기관의 소식지에 머물지 않고 아시아로까지 시야를 넓힌 문화 전문 비평지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 시작 과정은 <인천문화재단 5주년 백서>에 잘 나타나 있다.

당시 인천문화재단 홍보출판팀장을 맡고 있던 강경석 문학평론가가 쓴 '<플랫폼> 연대기'에 보면, 인천문화재단을 대표하는 새로운 잡지가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2006년 1년 동안 수십 차례의 내부 토의를 했다고 한다. 한류(韓流), 일류(日流), 화류(華流)가 교섭하고 착종하는 동아시아 지역을 무대로, 인천과 한반도 문화의 안팎을 토론하고 성찰하는 매체를 만들고자 했고, 그를 위해 선택한 게 <플랫폼>이었다.

기본 방향은 인천, 한반도,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예술 활동이나 현상에 대한 경량급 비평지에 맞추기로 했다. 비평에 중점은 둔 것은 국내에 문화비평지라고 할 만한 매체가 당시에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도 반영되었다.

<플랫폼> 편집 담당 조직은 처음에는 TF팀 형식을 띠었다. 2007년 하반기부터는 주무 부서였던 연구출판팀에서 발간 과정 전반을 처리했다. <플랫폼>은 2008년 창간 2주년을 맞아 '한국 추리 문학 100년의 도전'이란 학술심포지엄도 개최했다. 이때 학술심포지엄의 결과물은 <플랫폼> 통권 12호(2008년 11·12월호)에 특집으로 실렸다.

▲ 플랫폼 41호 표지.
▲ 플랫폼 41호 표지.

창간 2주년에는 또 하나의 굵직한 발자국을 남긴다. 미디어, 미술, 공연, 음악 등 4개 분야에 걸쳐 '플랫폼문화비평상'을 제정한 거였다. 침체된 문화예술 비평계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제정한 '플랫폼문화비평상'은 우리나라 신진 비평가의 등용문이라 평가할 만했다.

첫해에는 미디어 부문에 '누난 너무 이뻐 – 아이돌에 빠지는 누님들'(이정희)과 미술 부문 '오타쿠, 일본현대미술의 초상'(구나연) 등 2개 부문에서 당선작을 냈다. 2009 제2회 플랫폼문화비평상에서는 4개 부문 모두에서 당선작이 나왔다. 플랫폼문화비평상은 2013년 제 6회까지 이어졌다.

동아시아 지역의 도시 간, 국가 간 비평적 대화와 토론을 추구하는 만큼 <플랫폼>은 해외 필자들과 인천문화재단이 교류하는 동아시아 각지의 문화진흥기관들을 위해 그동안 3년간의 성과를 모은 영문판 선집 <플랫폼 앤솔러지(Platform Anthology)>를 2009년 10월에 발간하기도 했다. 이는 동아시아 각 문화 관련 기관에 인천문화재단의 문화 비평 역량이 높게 평가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2014년 5·6월호인 <플랫폼> 통권 45호에는 독자 박지애 씨의 <플랫폼> 평가 글이 실렸다. 박지애 씨는 대학생 시절인 2013년 겨울방학 때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창간호에서부터 그때까지 나온 <플랫폼>을 모두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플랫폼>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든 생각이, 통권 40회를 넘게 발간하면서 '아시아·문화·지역'이라는 다양한 키워드를 갖고 있어서 늘 신선한 느낌을 준다는 거였다고 했다. 평소에 생각하기 어려운 아시아 문화를 소개하는 이야기가 관심을 끌게 했다고 했다. 그 40권이 넘는 <플랫폼>을 읽다 보니 어느덧 문화와 관련한 풍부한 지식도 쌓게 되었다고 했다. 박지애 씨는 <플랫폼>의 표지 디자인이 독자들에게 읽고 싶게 하는 첫 번째의 장치로는 좀 부족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박지애씨는 '플랫폼문화비평상'을 높게 평가했다. 당선작의 참신한 소재와 개성 있는 글솜씨, 관련 분야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며 감탄했다면서 '플랫폼 문화 비평상'이 신진 비평가를 발굴하는 데 더 큰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평가했다.

박지애씨를 비롯한 많은 사람의 바람과는 달리 플랫폼문화비평상은 2013년 제6회까지만 수상자를 배출한 뒤 2014년부터는 공모를 중단했다.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인천시의 재정난이 심각했던 상황에다 2014년 아시안게임에 많은 재정이 투입되면서 다른 분야의 예산을 대폭 줄여야 했다. 플랫폼문화비평상 관련 예산은 전액 삭감되었다. <플랫폼> 발간에도 영향을 미쳐 컬러 지면을 대폭 줄이고 값이 싼 종이로 대체했다.

▲ 플랫폼  50호를 기념해 펼쳐놓은 모습.
▲ 플랫폼 50호를 기념해 펼쳐놓은 모습.

<플랫폼>은 2015년 3·4월호인 통권 50호부터는 종이책 출판이 아닌 웹진으로 발행했다. 디지털 잡지로 변화한 거였다. 웹진 발행조차 통권 55호까지만 이루어졌다. 2016년 1월 19일, <플랫폼> 휴간 공지가 떴다. '<플랫폼>은 이번의 통권 55호를 끝으로 1년간의 휴간에 들어갑니다. 국내 유일의 격월간 종합 문화예술 비평지로서 주어진 사명에 충실했던 <플랫폼>은 이제 1년 동안 문화예술의 경계 설정과 지역과 정체성을 반영한 위상을 재설정하기 위한 모색에 들어가기로 하였습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오늘의 우리 문화와 그것을 둘러싼 이슈를 어떤 방식으로 반영할지에 대해, 그리고 인천이라는 지역의 특수한 정체성을 어떻게 녹여낼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자 합니다. <플랫폼>은 휴간 중에 독자층의 설정, 종이책 출간을 포함한 발행 형태 등 모든 것을 열어놓고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1년간의 휴간이라던 <플랫폼>은 그 뒤로 다시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폐간되고 말았다. 인천의 문화적 안목을 아시아지역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던 <플랫폼>의 폐간은, 플랫폼문화비평상이 예산 문제로 중단된 것과 맞물려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인천생각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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