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벙커(bunker)라는 영어 단어에는 '석탄저장고'라는 뜻이 있다. 석탄이 가정용 연료로 자리 잡으면서 석탄 쟁여두는 장소를 벙커라 불렀다고 한다. 우리네로 치면 '연탄광'인 셈인데, 영국 벙커는 작은 방공호처럼 생겼던 모양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벙커는 방공호, 은폐나 방어를 위한 콘크리트 요새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그렇다면, 골프장 모래구덩이도 석탄저장고 안을 연상시켜서 벙커인 걸까?)

쓰레기소각장에서 벙커라고 하면 쓰레기를 모아 두는 시설을 가리킨다. 하루 수백 톤을 처리하려면 노르망디 독일군 요새 수십 개를 합쳐 놓은 규모의 벙커가 필요할 터이다.

1995년 부천시 삼정동에 건립된 쓰레기소각장 벙커의 콘크리트 벽 높이는 무려 39m였다. 하루 200톤씩이나 쓰레기가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이 벙커는 15년 동안 부천시민의 일상을 쓰레기로부터 지켜주었다.

지은 지 2년 만에 삼정동 소각장은 다이옥신 파동에 휩쓸렸다. 소각 시 맹독 발암물질 다이옥신이 배출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산본신도시 등 곳곳에서 파동이 벌어졌다. 시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삼정동 소각장 역시 6개월간 가동을 멈추고 보강 공사를 진행해야 했다. 이후 삼정동 소각장은 2010년 대장동소각장으로 기능이 통합될 때까지 가동되었다.

용도 폐기된 소각장은 방치되다가 2014년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획기적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도시재생 업사이클링 과정에서 문화예술 시설로 변모한 산업시설이 많지만, 소각장의 변신은 부천이 처음이었다. 2018년 새롭게 개관한 삼정동소각장의 새 명칭은 '부천아트벙커B39'다. B는 부천, 벙커, 경계 없음(Boderless)을 의미하고, 39는 소각장 시절 벙커의 높이와 바로 앞을 지나가는 39번 국도에서 따왔다고 한다.

처음 들으면 낯설어도 곱씹어볼수록 잘 지은 이름이다. 경계를 넘어선 문화예술의 저장고, 세상 튼튼한 문화예술의 요새라는 어감이 동시에 전해진다. 석유비축기지를 문화비축기지로 명명한 센스보다 조금 윗길이라 하면 과찬일까. B가 숫자 39와 결합하니 높이에 속도감까지 더해진 느낌이다.

부천아트벙커B39에 가면 문화예술로 승화한 산업문명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지난 4월에는 소각동 상층부를 추가 개방하고, 관리동을 지역재생 플랫폼으로 리모델링하여 재개관했다. 부천아트벙커B39가 파리 오르세 미술관(옛 기차역), 런던 테이트 모던(옛 화력발전소) 같은 명소에 못지않은 부천의 자랑이 되기를 기원한다.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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