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두고 막고 나서야 겨우 숨통이 트이는 공간이었다. 가리고 닫고서야 가냘픈 삶이라도 그나마 잇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것도 온 세상이 3년하고도 넉 달씩이나.

헬스 케어의 첨단기술로 생명 연장의 꿈에 닿은 초일류 국가라는 나라조차도 하찮던 N95 마스크를 대지 못해 스러져간 주검들을 속절없이 바라봐야 했다.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었던 항균 비누와 화장지가 동난 채 채워지지 않는 슈퍼마켓의 진열대 앞에서 허망하게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인간의 능력과 완전성은 그것을 방해하는 모든 힘을 넘어 진보할 것이다'라는 믿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최소 비용에 최대 효과라는 기치를 내걸고 굴복시킬 듯이 함부로 다룬 자연계에 인류는 꼼짝없이 되치기를 당하고 말았다.

인간의 탐욕과 오만은 린(Lean) 물류 공급망과 린 제조공정에 그대로 투사됐다. 효율성을 가장 높은 단계의 가치로 받들고 정상에 오른 글로벌 국가와 기업들은 비상용 완충장치를 아무 거리낌 없이 제거했다. 큰돈이 드는 반복과 중복 시스템을 거추장스럽다며 가차 없이 걷어냈다.

창고와 관리가 뒤따르는 잉여 재고는 그들에게 순익을 떨어뜨리는 악재일 뿐이었다. 응급조치가 가능한 백업 제조시설은 추가비용만을 요구하는 장식품 따위로 내팽개쳤다. 물류시스템의 중단과 저속을 막는 대체 공급망 옵션은 사업성을 갉아먹는 걸림돌쯤으로 강등시켰다.

세계화는 환경보호 협약을 포기한 채 값싼 노동력을 쫓아 세계 여기저기를 들쑤셨다. 싼 노동력이 안받침하는 재화와 서비스 생산은 자유무역이라는 틈새를 벌려 가난한 나라로 향했다. 그렇게 생산된 제품은 무관세라는 푯말을 달고 컨테이너 화물선과 화물기에 실려 잘 사는 나라로 빨려 들어갔다.

효율성과 생산성으로 무장한 세계화는 결국 회복력을 무너뜨렸고,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공격에 맥을 못 추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뒤도 안 보고, 앞만 향해 돌진하는 진보의 시대는 이제 종말을 고하고 있다. 효율성에서 적응성으로, 금융자본에서 생태 자본으로, 생산성에서 재생성으로, 성장에서 번영으로, 소유권에서 접근권으로, 세계화에서 세방화로, 공감과 생명애를 탑재한 이 거대한 흐름이 새 시대를 여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 미래의 성패는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 대한 심오한 공감적 울림을 어떻게, 또 얼마나 넓게 공유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정환 기자 hi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