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공예명장 선정·선조 생활상 닥종이 표현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시리즈' 많은 찬사 받아
“전통문화 계승…한지 아름다움 널리 알릴 것”
▲ 전진숙 한지공예가 /사진제공=고양시
▲ 전진숙 한지공예가 /사진제공=고양시

 

“우연히 인사동에서 닥종이 인형 전시를 보게 됐어요. 다양한 한지 공예품을 보면서 한지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에 매료됐고, 내가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일이 바로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두 아이의 엄마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전진숙 작가는 우연히 한지공예 전시를 보고 강한 영감을 받았다.

과거 한지에 정갈하게 글씨를 쓰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났고, 그 옆에서 한지를 갖고 놀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결혼 후 경력 단절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전진숙 작가는 나이가 들어도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기에 한지공예가 건넨 영감은 운명처럼 느껴졌다.

전 작가는 서른 살에 한지공예를 익히기 시작했다.

인사동 예원문화협회에서 한지공예를 배운 후, 최옥자, 김병하 스승님을 찾아 가르침을 받은 뒤 전주의 예원예술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 진학했다.

닥종이 인형에 풍부한 감정을 담고 싶어 인체조형해부학까지 공부하며 한지공예에 매진했다. “저는 한지공예가 지닌 아름다움과 포용력에 빠져들었어요. 그리고 꿈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와 원동력을 갖고 있었죠. 한지공예를 향한 애정과 열정이 오늘의 저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2004년 인사동 경인미술관 에서 '감서리'란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초대장 한지 부조 인형 제작, UN 반기문 총장 한국 대표부 홀 전통 한지 조명등 작업, 오스트리아 빈 IAEA 50주년 국제 콘퍼런스 전시, 강원도 인제 빙어축제 총연출, 세종문화회관 송강 정철 전시, 강서구 허준 축제 등 다양한 활동을 했고 2021년에는 고양시 공예명장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의 작품을 보면 과연 한지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 있을까 싶다. 특히 첨성대, 한글 직지심체요절 등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얼이 담긴 조형물을 한지로 재현한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시리즈'는 많은 찬사를 받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전국 문화유적 답사를 다녔어요. 그때 자연스럽게 우리 전통문화나 문화재의 아름다움, 선조들의 생활상을 닥종이에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한지에 담다'라는 주제로 강화, 순창의 고인돌, 수원 화성, 경주의 첨성대, 한글 직지심체요절, 농악 등을 제작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전 작가는 손바닥만 한 사각형의 얼굴 속에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작품을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매일 자신의 감정을 닥종이 인형에 담았는데, 나중에 그 개수를 확인해보니 공교롭게도 108개여서 작품의 이름을 '108개의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라고 정했다.

또 '피카소와 가면'은 피카소의 큐비즘을 접목해 철사, 삼베 조각, 나무 등을 붙이는 콜라주 기법으로 현대인의 얼굴을 만들었다. 한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놀라운 시도였고 해외에서도 전시 및 구입 문의가 많았다. “파블로 피카소 전시회에 갔다가 다양한 자화상을 보며 우리 한지와 접목해서 표현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한지가 표현해낼 수 있는 범위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알리고 싶기도 했죠. 다행히 반응이 좋아 지금도 계속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 전진숙 작품 '꿈결' 80*45cm 한지, 염료, 마감재 2018.
▲ 전진숙 작품 '꿈결' 80*45cm 한지, 염료, 마감재 2018.

전진숙 작가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작품 주제는 '흐를 류(流)', 흐름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시간, 바람, 물 등 우리 곁을 스치는 찰나의 것들을 한지로 표현해내고 싶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한지를 잘라 3~4장 겹쳐 물을 사용하여 붙이고, 양손으로 수십 번 비비고 주무르는 줌치 기법을 이용해 한 장, 한 장 핀셋으로 붙여내면 마치 유화로 그린 추상화처럼 그러데이션과 입체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지는 닥나무와 황촉규(黃蜀葵)를 주재료로 닥나무를 베고, 찌고, 삶고, 말리고, 벗기고, 다시 삶고, 두들기고, 고르게 섞고, 뜨고, 말리는 아흔아홉 번의 손질을 거친 후 마지막 사람이 백 번째로 만진다고 하여 '백지(百紙)'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그만큼 우리 한지가 가진 우수성이 뛰어난 거죠. 저는 앞으로도 우리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 한지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습니다.”

/고양=김재영 기자 kjyeong@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