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하기 전까지 기거한 공간
소유권 변경 후 방치…훼손 우려
안성시는 보존 대책 없이 뒷짐
청록파 박두진 시인이 작고하기 전까지 작품 활동을 한 집필실이 소실 될 위기에 놓였다. 유품 1000여점도 마찬가지다. 박 시인의 후손이 소유했던 '집필실의 소유권'이 다른 사람 명의로 변경되면서 무단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인천일보 취재에 따르면 안성시 금광면 오흥리에 있는 집필실은 박두진 시인이 은퇴 후 작고하기 이전인 1998년까지 기거한 곳이다.
집필실 내에는 고인이 생전 사용했던 집기를 비롯해 친필 시화 액자 10여점과 1000여권의 장서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박 시인이 평소 수집했던 수석 등 다량의 유품이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두진(1916∼1998) 시인은 안성시 태생으로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했다. '해', '청산도', '수석열전' 등 유수한 작품을 남긴 문학계의 대표적 인물이다.
박두진 시인의 집필실이 문화재 가치가 있는데도 무단 방치돼 유품들이 소실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1일 본보 취재진이 집필실을 방문한 결과 거주자가 없는 상태에서 시건 장치 없이 문이 열려 있었다. 집필실 창문 넘어로는 유품들이 방치된 모습들이 보였다.
또 집필실 바로 옆은 토지 개간 공사가 진행돼 자칫 집필실 외부의 훼손 우려도 있었다.
집필실은 박두진 시인의 후손 소유였다가 지난해 7월쯤 다른 소유주로 변경되면서 무단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미국 국적의 현 소유주 A씨가 집필실 철거를 박 시인의 후손에게 요청하면서 갈등도 빚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시인의 후손 B씨는 아버지의 유품을 안성시에 위임했지만 시는 뚜렷한 대책 없이 뒷짐지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시민 C씨는 “박두진문학관 내 안내 영상을 보고 집필실을 찾았다가 허름한 모습에 실망을 하고 돌아갔다”며 “문화적 보존가치가 높은 박두진 시인의 집필실에 대한 안성시의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지역 문학계도 반발했다.
김은희 한국문인협회 안성지회장은 “안타깝다. 박두진 시인은 안성을 대표하는 위인으로서 집필실이 방치돼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공공재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박 시인의 집필실은 보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자체의 지원과 후손들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며 “문인협회에서도 이를 해결할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성시는 집필실 내 유품을 이전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안성시 관계자는 “집필실 내 유품은 박두진 시인의 배우자분으로부터 기증받아 다음 달 문학관으로 옮겨질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사유지다 보니 우리가 집필실에 직접 시건 장치를 설치하는 등의 조처를 할 수 없다. 소유주에게 연락을 취해 장치 설치를 당부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명종·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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