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관광 홍보 영상 중 일부./사진=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 트위터 캡처

'우리나라로 놀러 오세요'…"여긴 우리나라가 아닌데요?"

전 세계인들을 끌어모으겠다며 만든 홍보 영상에 등장하는 곳이 알고 보니 우리나라가 아니라면 얼마나 황당할까.

실제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논란이다.

이탈리아 관광부에서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만든 홍보 영상 중 일부가 실제로는 슬로베니아에서 촬영된 사실이 들통나 논란이 일고 있다.

홍보 영상에서 한 무리의 젊은 남녀가 맑은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에서 와인을 마시며 웃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전형적인 이탈리아의 모습으로서 의도된 이 장면이 사실은 인접국인 슬로베니아의 코타르 지역에서 찍은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해당 논란은 현지 언론 보도하며 불거졌고, 이후 누리꾼들은 영상 속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병에 코타르 와인 라벨이 부착된 사실을 직접 밝혀내기도 했다.

한 현지 일간지는 해당 영상을 네덜란드 감독이 연출했다고 전하며 "촬영지·촬영 소품·연출자까지, 가장 이탈리아다워야 할 영상에 이탈리아적인 요소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관광부가 '경이를 열다'(Open to Wonder)라는 타이틀로 내놓은 이번 관광 캠페인은 이 문제 외에도 그전부터 탐탁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관광부가 발탁한 새 관광 홍보대사에 다수의 이탈리아 국민이 의문을 표한 것이다.

▲ 이탈리아 새 관광 홍보대사로 발탁된 보티첼리의 비너스./사진=비너스 인스타그램 캡처

관광부는 15세기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명작 '비너스의 탄생'에서 묘사된 비너스를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현재 가상의 인플루언서로 묘사해 새 캠페인에서 활용했다.

이 비너스는 인플루언서로서 청재킷 등 현대적 의복(?)을 입고 이탈리아의 주요 관광명소에 등장한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자신의 얼굴을 사진 찍어 올리고, 콜로세움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코모호숫가에서 피자를 먹는다.

비너스는 이를 SNS 계정에 올리고 "난 서른 살이에요. 그래요. 조금 더 나이가 많을 수도 있죠"라며 자신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탈리아'하면 누구나 아는 관광명소를 배경으로 한 데다 대표 음식인 피자까지 등장하자 SNS상에선 해당 캠페인에 대해 '촌스럽다', '창피하다', '진부하다' 등 혹평이 잇따른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 내부에서도 강한 비판이 제기됐다.

예술 평론가 출신인 비토리오 스가르비 문화부 차관은 "비너스가 그렇게 차려입을 게 아니다"라고 비꼬는가 하면 "그런데 '경이를 열다'가 무슨 말이죠? 무슨 언어인가요?"라며 캠페인 제목까지 조소했다.

한편, 이 홍보 캠페인에 900만 유로(약 132억 원)가 쓰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세금 낭비'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문가 조차 "기괴하고, 터무니없는 돈 낭비"라고 지적하자 다니엘라 산탄체 관광부 장관은 900만 유로라는 돈은 전 세계 공항과 도시에서의 홍보를 포함한 총비용이라고 해명하며 "비너스를 인플루언서로 묘사한 것은 젊은이들을 사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유진 기자 yes_uj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