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노벨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 소설
엄마 잃는 과정 애달프게 서술
당신을 위한 책 한 권
▲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아니 에르노 저자 김선희 옮김 열림원 176쪽·1만3000원

“이제는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

몇 년 전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친척 어르신이 입원한 요양원을 찾았다. 십수 년 전 잠깐 스친 후 다시 만난 그 어르신은, 하지만 어디에도 안계셨다. 꼿꼿하고 날이 섰던 그녀는 겨우 알아볼 정도의 형태만 남은 상태였다. 수분이 말라버린 피부는 잿빛이 돼 있었고, 오래도록 쓰지 않은 침대 옆 휠체어는 주인을 잃었다. 그렇게 죽음의 과정을 목도했다.

집에 오는 길 어머니는 말했다. “보살펴주지 않아도 된다. 집에서 혼자 죽더라도 요양원은 절대 보내지 마라.” 한탄과 한숨, 하소연이 뒤섞인 그 말은 가끔 가슴을 짓누른다.

누군가로부터 우연과 운명의 경계처럼 아니 에르노(Annie Ernaux)를 소개받았다.

아니 에르노 소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어머니'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막연하지만 뚜렷하고, 은은하지만 이보다 더 뜨거울 수 없는 어머니를 잃게 되는 과정이 애달프다.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은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화자가 써내려가는 어머니의 치매일기이다.

“이제 자야지, 고마워요 부인” 어머니가 딸에게 말한다. 어릴 적 딸과 중년이 된 딸을 혼동하는 어머니, 이러한 기억상실증에 더는 화를 내지 않는 딸. '강한 타성에 젖어 무감각해져 간다'.

그리고 딸은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 그 한줄에 무너진다. '사랑하는 폴레트,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았어'.

“어머니는 이젠 글마저도 쓸 수 없게 되었다. 이 편지의 글은 마치 전혀 다른 여자가 써놓은 것 같았다.”

요양원을 보낼 수밖에 없는 딸, 띄엄띄엄 요양원을 찾지만 그때마다 딸은 상태가 악화돼 죽음과 가까이하는 어머니와 마주하며 괴로워한다. 그렇게 죽음을 받아들여야지만, 아직 놓칠 수 없다.

“옷을 갈아 입힌 후 나는 울었다. 예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지금 다름 아닌 내 몸을 보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까봐 두렵다. 어머니가 세상에 없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딸은 어머니가 됐다. 하지만 어머니는 딸이 될 수 없다며 수없이 써내려간다. 그리고 죽음 앞에 선 어머니가 '집착'을 내려놓는 것을 지켜보며 “내가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는 사랑이란 더는 충족시켜드릴 수 없는 한계에 달한 사랑이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내게서 멀어지기만 하는 사랑을”이라 말한다.

그렇게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이젠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작가가 딸을 빌려 말한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어머니는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글로 적은 것이다. 무섭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결코 이 말을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니 에르노는 '작가의 말'에 “나는 잠에서 깰 때마다 잠시 동안 어머니가 죽었으면서도 동시에 이중 형상으로 실제로 살아 있음을 확신한다. 마치 죽음의 강을 두 번 건넌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처럼”이라고 끝맺는다.

“오 그대여,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언젠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 오리라.”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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