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2년 몽골군이 고려로 쳐들어왔다. 벌써 4번째. 고려 고종은 강화도로 피했다. 몽골군은 강화도로 건너가고자 했으나 수군이 약해 실패했다. 총지휘관인 살리타이(살례탑)는 개성 일대를 비롯해 경기도를 불태워 강화도를 고립시키고, 더 남하하여 고려 땅 전체를 초토화하기로 했다. 그해 12월 10만 대군을 이끌고 남쪽으로 진격하던 살리타이는 처인부곡 근처의 작은 성에 곡식이 상당히 저장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살리타이는 100명 정도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성, 처인부곡성을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처인부곡성은 승장(僧將) 김윤후(金允侯)와 처인부곡 사람 몇십 명이 지키고 있었다. 부곡은 군·현에 속한 행정구역으로서, 천민으로 간주되는 백성이 거주하는 지역을 일컫는다. 처인현이든, 인근 용구현이든 귀족들과 하급관리들은 다 도망가고 오합지졸 천인들이 성을 지키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반전이 일어났다. 성을 둘러보러 나섰던 살리타이의 눈을 김윤후의 화살이 꿰뚫어 버렸다. 살리타이는 즉사했다. 총사령관을 잃은 10만 몽골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고려에서 물러났다.
화살 한 발로 나라를 구한 김윤후에게는 상장군 벼슬이 내려졌으나 그는 극구 사양했다. 하급 무관 자리에 만족한 김윤후 장군은 훗날 몽골의 5차 침공 때 충주성에서 또 한 번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처인부곡성은 부곡이라는 꼬리를 떼고 처인성으로 승격했다. 용인시 처인구의 처인은 바로 여기서 나왔다. 경기도기념물 처인성은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아곡리에 있다. 처인현은 용구현과 합쳐져 조선 태종 때 용인현이 되었다. 1914년 서촌면 남촌면 등 4개 면을 통합해 남사면이라 했다. 남사라는 지명은 용인현 남쪽 4개면이 합쳐진 고을이라는 뜻이다. 용인의 가장 남서쪽인 남사는 동탄신도시·오산시·평택시 진위면 등과 접해 있다.
남사는 용인에서 가장 최근 읍으로 승격했다. 개발의 광풍이 경기도를 휩쓸던 시절에도 남사는 외진 시골로 남아 있었으나, 2018년 상황이 일변했다. 처인성 북쪽 아곡지구 아파트단지 입주가 이뤄지면서 인구가 급증한 것이다. 2018년 6월에 6800여명 수준이던 인구가 그해 말 2만 명을 넘어섰다. 불과 6개월 새 3배가 불어난 셈이다. 남사면은 2021년 2월 읍이 되었다.
지난주에 삼성전자가 남사 일대에 앞으로 20년간 300조원을 들여 초거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처인성 전투 이래 역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 없이 조용히 살던 남사에 최첨단 산업의 회오리바람이 불어 닥칠 모양이다. 이번에도 단 한 발에 과녁을 꿰뚫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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