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 원주민·女의용대 등
6·25 경험한 5인의 삶 조명

당시 10대였던 이들 이제는
90대 고령층…채록 시급해 작업

“9월10일 날 아침에는 (미 해병대가 중구 월미도에) 폭격을 하면서,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머리에 맞아서 죽은 사람, 또 팔 떨어져 죽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중략> 폭격이 자꾸 있으니 아버지하고 작은아버지하고 할머니 모셔온다고 가셨는데, 우리 할머니가 머리가 하야셨거든요. 그때도 (나이가) 팔십 가까이 되셨어. 여덟 살 먹은 사촌동생하고 아버지가 왼손에는 조카딸을 끼고, 할머니는 다른 손으로 붙잡고 그러고 뛰는데도 거기다가 기관포 사격을 하더래요. <중략> 배를 타고 오는데도 하얀 수건을 흔드는데도, 그렇게 사격을 하더래요.”

-임인자(86) 어르신, 전쟁이 끝났어도 귀향하지 못한 월미도 원주민의 이야기 편, p36

 

“내가 (여학생 의용대로) 부산 갔다 오니까 친구네 오빠가 와서 (남동구 간석동에 살던) 동네 사람들, 다 머슴 살고 그러는 어려운 사람들을 집에 가서 다 쏴 죽였어요. 그때는 외양간 위에 닭을 키워요. 닭장을 이렇게 나무로 횟대를 매갖고, <중략> 내 친구는 밤중에 닭장에 기어 올라가서 총 안 맞아서 살았다고요. 1951년 2월12일이었다는데, 나는 3월에야 왔으니까 못 봤죠. 그 오빠가 무슨 보도연맹이라나 그거 했었대요, 우리는 몰랐지.”

-강분희(90) 어르신, 인천여학생 의용대원이 겪은 한국전쟁 이야기 편, p89

 


 

인천여성가족재단은 7일 포럼을 열고 생애구술사 1권 '인천여성이 경험한 한국전쟁과 분단'을 첫 공개 했다.

인천에 거주하면서 6·25 전쟁을 경험한 여성 5인의 삶을 다룬 내용이다. 각각 월미도 원주민, 여학생 의용대, 구월산유격부대원, 강화도 섬 주민, 월남한 전화교환원 등으로 살아온 어르신들은 면담자와의 2∼3차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삶을 풀어냈다.

오는 2026년까지 인천여성 구술채록서를 발간하는 재단은 무엇보다 한국전쟁 관련 기록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전쟁을 겪을 당시 아동·청소년이었던 이들 모두 90대 전후의 고령층으로 접어든 까닭이다.

책임연구자인 김정란 재단 정책연구실장은 “다음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이 있었다”며 “보훈단체와 군·구 추천, 문헌조사 역추적 등을 통해 구술자 모집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책에는 전쟁에 대한 경험 외에도 인천에서 경제활동을 해온 여성들의 생활상도 다뤄졌다. 어르신들은 각자 전화교환원, 식모, 뜨개질, 구멍가게 운영, 공장노동, 하숙치기 등으로 일하며 가족들을 부양했다고 언급했다.

한편 재단은 내년엔 '인천지역의 공단과 여성의 공장노동'을 주제로 구술채록 작업을 할 예정이다. 이현애 재단 대표이사는 “지역에서 삶을 면면히 일구어낸 평범한 여성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크다”며 “시리즈를 통해 인천 여성의 삶의 특징을 선명히 드러내는 책들을 지속해서 출판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은희 기자 haru@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