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신용석 특파원】 미국에 거주중인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프랑스 여행중 1주일째 행방불명이다. 김씨는 2주전 파리에 도착, 처음 투숙했던 호텔에서 샹젤리제에 있는 웨스트 앤드 호텔로 옮겼으나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15일 확인되었다. 주불 한국대사관에서는 이날 파리 경찰당국에 김씨의 실종에 대해 조사를 의뢰했다.
▶1979년 10월16일자 조선일보 1면에 크게 보도된 특종기사였다. 필자가 김형욱씨의 실종기사를 다른 언론사보다 먼저 쓸 수 있었던 것은 그해 초부터 김씨를 파리에서 여러 차례 만났기 때문에 미국에 사는 부인으로부터 남편이 실종된 것 같다는 국제전화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전화를 받은 곳은 파리가 아니라 본사 주최 '프랑스 미술 영광의 300년' 전시회 개막을 끝내고 임지인 파리로 귀환하면서 도쿄에 들렀을 때였다. 따라서 타사 특파원들은 파리에 없는 신 특파원이 특종기사를 쓸 수 있었던 것에 의문을 품게 되었던 것 같았다.
▶전직 중앙정보부장이었고 미국에 망명하여 반정부 활동을 하면서 미의회 청문회에서도 박 대통령의 유신체제를 통렬하게 비판한 김형욱은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로 꼽혔다. 더구나 박 대통령의 탄생 때부터 대통령의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부정적 측면을 강조한 책자가 출판되기 전부터 회자되면서 콜롬비아 대학에 다니던 딸까지도 배신자의 자식이라는 지탄을 받게되었다. 78년 가을에 파리에 와서 필자를 만난 김형욱은 자신의 딸을 프랑스 대학에 진학시키는데 도움을 달라고 간청했다. 왜 파리특파원으로 있는 필자를 찾아왔느냐고 물으니 당시 워싱턴의 동아일보 이웅희 특파원이 조선일보 신용석 특파원이 대학 쪽도 잘 알고 사리가 밝으니 도와줄 것이라고 했다는 대답이었다.
▶김형욱 실종 보도가 나간지 이틀 후에는 부산에 비상계엄에 연이어 이틀 후에는 마산 일대에 위수령이 선포되었다. 당시 제일 야당이었던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를 국회에서 기습적으로 제명처리하자 부산에서 불 붙기 시작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6일이 지난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은 현직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의 총탄에 향년 62세로 서거했다.
▶한국 현대사의 중대한 사건이 연속된 그 해 10월은 김영삼 제명→김형욱 실종→부산 계엄령→박정희의 시해로 점철된 극적인 한달간이었다. 반역자로 지탄받던 전직 중앙정보부장의 딸이지만 죄가 없다는 내 나름의 판단으로 김형욱을 여러 차례 만나고 그의 실종을 특종기사로 쓰게 된 연유로 무언의 그러나 의문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2007년 국정원 진실규명 위원회 조사 결과 김형욱은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에 의해 암살된 것으로 판명되면서 특종 기사를 썼던 필자가 의문의 눈초리에서 벗어나는 데는 꼭 28년이 걸린 셈이다.
/신용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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