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대우조선해양이 지난여름 파업을 한 하청노조 집행부 5명에게 청구한 손해배상액이 470억 원이다. 1인당 94억 원꼴이어서, 월 300만원씩 갚으면 원금만 261년 2개월이 걸린다. 대우조선해양이 이렇게라도 파업으로 입은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노조 하지 말라는 노골적인 압박으로 알아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노조 집행부 5명 각자가 어떤 불법행위를 저질러서 회사에 저런 손해를 입힌 걸까? 듣자 하니,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한다고 한다. 첫째, 노조(원)의 과실(불법행위)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것, 둘째, 손해가 발생했다는 것을 입증할 것, 셋째, 과실과 손해 사이의 관계를 입증할 것. 입증책임은 사용자가 진다. 대한민국 법원의 노동법 판례도 이런 원칙을 엄격히 따른다면 어떨까? 유감스럽게도 한국 법원은 파업 자체의 불법성만 따져서 두루뭉수리하게 손해를 인정하는 편이다.

전혀 다른 얘기이기는 하나, '젊은 영감님들' 접대 술자리는 법원이 손수 친절하게 '더치페이' 식으로 1인당 액수를 계산해 준다. 접대 총액을 참석 인원과 시간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더 과학적이려면 각자 몇 잔을 마셨는지, 안주는 누가 몇 점 집어먹었는지 따져야겠으나 이럴 경우 먼저 집에 갔어도 10잔 더 먹고 간 검사가 드러나면 안 되니 이 산식은 버린 게 아닐까 싶다. 하여튼 옆방에서 마시다 합석한 인원까지 쳐서 재계산을 했다는 대목에서는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파업 노동자에게는 왜 이런 유의 기적의 셈법이 작동하지 않는 걸까.

영국에서는 노조의 규모에 따라 파업 손해배상 상한액을 정해두고 있다고 한다. 조합원 5000명 미만은 최대 3만 파운드, 10만 명 이상이면 최대 100만 파운드(한국 돈 16억 원 정도)다. '노란봉투법'으로 분류되는 노동조합법 개정안 가운데는 영국 방식으로 손배액을 제한하자는 안도 있다. 하지만 재계와 여당은 모든 '노란봉투법'이라면 진저리를 친다. 재산권을 침해하는 “황건적 보호법”이라는 이유다.

대한민국 헌법에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되어 있다. 제33조 ①항) 별다른 전제조건이 없다. 물론 헌법엔 재산권도 명시되어 있다.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제23조 ①항) 재산권에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단서가 눈에 띤다. 손배소와 가압류가 노조 파괴 수단으로 악용되는 현실을 더는 외면하지 말라는 것이 헌법의 정신 아닐까.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