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서울 사당동 멸치횟집 벽에서 막걸리 랭킹을 본 적이 있다. 1위 양평 지평막걸리, 2위 부산 금정산성막걸리, 3위 충남 당진 백련막걸리, 4위 전남 여수 개도막걸리, 5위 화성 호랑이막걸리. 대략 이런 순서였던 걸로 기억한다. 전국 3대니, 5대니 하는 브랜드 마케팅이 탐탁지 않아 평소엔 이런 순위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체로 귀에 입에 익은 이름이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지평막걸리는 두말하면 잔소리고, 금정산성막걸리는 국내 최초 민속주(1979년)다. 백련막걸리는 2009년 청와대 공식 건배주로 지정된 바 있다. 포천 이동막걸리, 충북 진천 덕산막걸리, 고양 배다리 쌀막걸리, 장수막걸리가 순위에 빠진 이유가 궁금하긴 했다. 독자들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랭킹을 고치고 싶은 다른 막걸리가 있을 터이다.

'막걸리 빚기'가 지난해 6월 정식 국가무형문화재가 되었다. 특정인이나 특정상표가 아니라 '막걸리 빚기' 자체가 공동체 종목으로서 목록에 올랐다. 막걸리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추진 중이다. 유럽 와인이 진즉에 등재되었고,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사케와 쇼추(소주)의 등재를 위해 이미 뛰고 있다고 한다. 2013년 일본식 전통음식 문화인 와쇼쿠(和食)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된 것에 고무된 듯하다. 같은 해 우리 김치도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 바 있다. 막걸리와 사케는 어찌 될까?

막걸리는 원래 김치처럼 집집마다 담가 먹는 술(가양주)였다. 그런데,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은 일본은 술에 세금을 붙여 재정수입을 늘리기로 했다. 술을 빚어 먹으려면 면허를 내도록 하고, 면허세를 받았다. 초기엔 세금을 싸게 매겨 대량으로 면허를 내주었으나, 점차 조건을 까다롭게 하여 전국의 양조장 수를 조절했다. 이로써 가양주의 전통은 끊어지고, 양조장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오늘날 100년 전통의 양조장이라 부르는 양평 지평양조장이나, 고양 배다리술도가가 양조장 면허를 받은 해는 1925년이다. 백련막걸리의 당진 신평양조장은 1933년 면허다. 식민당국의 횡포가 아니었다면 막걸리 비법과 맛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해졌을 게다.

1990년대 후반 남북관계 물꼬를 틀 무렵 북의 요청에 따라 '남한 대표' 막걸리를 선발해서 보낸 적이 있다. 그 때 뽑힌 먹걸리는 고양 막걸리(배다리술도가), 포천 막걸리(이동주조), 서울 막걸리(장수막걸리)였다. 멸치횟집 랭킹과는 좀 차이가 있다. 술도 음식이고, 입맛은 세월 따라 변하는 법이다. 다음달 8일부터 11일까지 고양 일산동구 고양문화원 앞 광장에서 대한민국 막걸리축제가 열린다. 3년 만에 제대로 열리는 축제가 반갑다.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