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의 전문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책을 쓴 이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그 어마어마한 일이 누구에게는 손쉬운 일상이지만, 그 누군가에겐 아주 특별한 일이 되기도 한다. 책을 매개로 한 특별한 만남. 봄에서 겨울로 이어진, 사람의 마음을 시나브로 물들인 그 성장기록이 참 따스하다.
이별이 빨리 찾아오는 것이 기쁘고 다행스러운 역설적인 관계가 있다. 어떤 아이는 때가 되어 집에 가고, 어떤 아이는 중학교 학력 인정을 받게 되어 자격증 취득반으로 옮겨간다. <소년을 읽다>는 아이마다 교사와 만나고 헤어지는 시기가 모두 제각각인 조금은 특별한 학교의 이야기다. 소년원은 교정과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교육기관이다. 그래서 ○○○학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소년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적게는 한 명, 많게는 일곱 명의 소년과 함께 일 년 동안 국어 수업을 했다. 짧은 글쓰기, 시 한 편 외우기, 한자 성어, 책 읽기와 저자와의 만남 등으로 이뤄지는 수업이다. 세상과 창살과 벽으로 단절된 그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수업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받을 줄 알고, 그것을 고마워하는 아이. 슬픈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아이. 동네에서 복날 즈음에 개 잡는 것을 보고 너무 잔인해서 개고기를 절대 먹지 않는 아이. 다르게 살고 싶지만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아이. 만남이 있기 전 꿈속에서마저 걱정하던 험상궂은 아이들이 아니었다. 짜장면과 과자, 젤리를 좋아하고 아이돌 스티커에 환호했다. 막연했던 편견과 달리 그저 평범한 소년들이었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보따리장수처럼 아이들 수만큼 책에서부터 간식, 프린트, 수업재료를 가득 싸서 짊어지고 가면서도 늘 신이 났다.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소년들과 함께한다. 그들로부터 큰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소년원에서 파란색은 9호 처분, 연두색은 10호 처분을 받은 아이들이다. 9호보다 소년원에 머무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센 처분이 10호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색깔로 자신들을 구분한다. 색에도 상처가 있다. 아이들에게 이곳의 시간은 인생의 겨울일 뿐이다. 자신의 존재를 모두에게 부정당하는 시간, 숨기고 싶은 시간이자 소년의 삶에서 어떤 흔적도 남기고 쉽지 않은 시간이다. 그들과 함께한 저자도 그 시간 속에 예외일 수 없다, 그는 누군가의 어두운 시간, 달아나고 싶은 시간, 숨기고 싶은 시간에 함께 있는 사람이다. 그는 그걸 알면서도 소년들에게 지극한 마음과 정성을 들인다. 비록 허전함과 쓸쓸함을 받아 주머니에 넣고 길을 걸어야 하는 시간이 온다 할지라도.
나의 마음을 순하게 만드는 사람. 사납고 날 선 마음의 결을 조용히 빗질해서 얌전하게 만드는 사람. 싸우듯이 살다가도 팔다리에 긴장 풀고 몸도 마음도 평평하게 눕게 하는 그런 사람. 이런 사람 하나 없다면 누구도 멀쩡하게 살아가기 힘들다. 소년에게는 더 절실한 존재, 사무치게 필요한 존재라고 저자는 말한다. 좋은 삶을 배우려면 좋은 삶을 맛봐야 한다. 소년이 좋은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좋은 삶을 욕망하게 되기를 그는 소망한다. <소년을 읽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책이 있는 만남, 책이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는 만남, 이런 만남의 힘이 무르지 않다는 것을, 단단하다는 것을 머리 아닌 가슴으로 알게 해준다. 쉽게 읽힌다. 하지만 그 여운은 길고 깊다.
/이성희 서운중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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