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석의 지구촌./인천일보DB

1980년 10월28일에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지미 카터와 도전자 레이건의 첫 번째 TV 토론회가 있었던 날이다. 당시 레이건은 토론에 대한 전술적 계획은 없어 보였지만 여유 만만했고 토론 종료 멘트를 할 차례가 오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카메라를 응시하더니 다음과 같은 말로 토론을 끝냈다. “지난 4년간의 삶이 힘들었고 경기 회복이 되기 위해서는 카터가 실직자가 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카터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해밀턴 조르단 비서실장은 그 후 <위기>라는 자서전을 통해 “레이건 후보는 그 말 한마디로 40대 대통령이 되어 8년간 집권했다”고 썼다.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나고 존슨 대통령과 포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4년간 집권한 공화당에 이어서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이 된 카터는 워싱턴 정가에서는 무명의 지방 정치인이었다. 남부 조지아주 상원의원을 거쳐 주지사가 된 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물리치고 백악관의 주인이 된 그는 조지아주에서 정치를 함께했던 동지들과 백악관에 자리를 잡았다.

▶비서실장을 위시하여 대변인 등 요직에 고향 사람들을 대거 임명하자 미국 언론들은 당시 '조지아 사단' 또는 '조지아 마피아'라고 불렀다. 당시 부통령이던 월터 먼데일의 비서실장으로 있던 제임스 스미스가 대학 졸업반 때 미국전국학생협회(USNSA) 회장단으로 방한했을 때 잘 아는 사이가 되어 그 후 '조지아 마피아'에 대해 물어보니 “대통령 측근을 마피아로 부르는 언론이 마피아 행태가 아니냐”며 정색하던 기억이 난다.

▶1981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미테랑은 프랑스 사회당 정부를 탄생시켰다. '사회당 선언'이라는 공약집을 통해 프랑스의 기존 보수체제를 개조하는 혁명적인 정책을 집행 하면서 엘리제 대통령실로는 레지스 드브레를 외교 고문으로 임명했다. 쿠바 혁명에서 카스트로 동지들과 함께 했던 그는 체 게바라와 볼리비아 혁명운동에 참여했으며 1970년도 초 칠레에 살바도르 아옌대 사회당수가 대통령이 되는데 앞장선 라틴아메리카 혁명의 주역이던 급진파였다. 필자가 파리특파원 당시 몇 차례 만났던 드브레는 혁명을 프랑스로 수입하자는 것이 아니라 카스트로-체 게바라-아옌대로 연결되는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경험을 숙고하자는 것이라 했고 프랑스 언론은 그의 임명을 문제삼지 않았다.

▶공정한 선거를 통해서 선출된 대통령이 측근들과 국사를 협의하는 것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면서 '윤핵관'이라는 신조어(新造語)를 만들어 끈질기게 활자화하는 언론은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다. 윤은 몰라도 '핵'이나 '관'은 어감 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대통령이 신뢰하는 측근들과 협의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주류 신문의 자세는 하루 속히 시정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 신용석 언론인.<br>
▲ 신용석 언론인.

/신용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