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비닐하우스서 자던 31세 속헹씨 '저체온증 사망'
정부 개선정책 후 1년 지나도 현장은 여전…도내 1500개 확인
“단속·감시 없어 방기하는 꼴…재정적 지원 등 공공 노력 필요”
▲ 지난 13일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가 확인한 포천지역의 불법 기숙사. 고(故) 속헹씨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외국인 노동자 주거시설 개선 정책이 시행됐지만,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사진제공=포천이주노동자센터

비극이 남긴 교훈은 어디로 갔나. 지난해 난방도 되지 않는 열악한 비닐하우스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숨진 사건을 계기로 관련 정책이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현장에서는 불법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단체는 단속 강화 등 정책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13일 오후 포천시 가산면의 한 채소농장.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로 있는 김달성 목사는 네팔 국적 외국인 노동자 2명을 만났다. 앞서 5월 입국(비전문인력비자·E-9)한 이들 노동자는 '기숙사가 어디 있냐'는 김 목사의 질문에 농장 한 귀퉁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엔 가설 건축물이 있었다. 철제에 비닐 등 거적때기를 걸쳐 마치 움막처럼 생겼다. 난방이나 요리 등 살면서 꼭 필요한 기능은 고사하고, 비바람을 완전히 막는데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숙박시설 제공'이라고 쓰인 근로계약서에 서명했지만, 마주한 실상은 너무 달랐던 것.

노동자들은 각각 15만원, 20만원씩 적지 않은 월세까지 내고 있었다. 엄연히 불법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월 이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농·축산업 외국인 노동자 주거시설 개선정책을 수립한 바 있다. 사업장에서 컨테이너, 샌드위치패널 등으로 지은 불법기숙사를 제공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골자다. 기준을 어긴 사업장은 고용 허가를 받지 못한다.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의 주거환경 문제에 나선 경우는 처음인데, 당시 한 캄보디아 국적 여성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계기가 됐다.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한파가 닥친 2020년 12월, 포천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던 고(故) 속헹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의 나이 고작 31살.

간경화 등 건강이 워낙 좋지 않은 상태에서 저체온증이 겹쳐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정됐다. 2016년부터 4월부터 5년 가까이 국내에서 일한 속헹씨는 전기가 공급되지 않고, 난방이 없는 기숙사에서 지냈다. 또 직장의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복지공단은 속헹씨의 산재를 인정했다. 인권단체는 이후 불법기숙사를 전면 금지하고, 관리감독 강화 등의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해왔다.

사회적 시스템이 변화한 지 1년이 훨씬 지났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농가 등 외국인 노동자가 있는 사업장을 모니터링하고 고발하는 포천이주노동자센터는 기숙사 가운데 50~60%를 불법으로 파악했다. 실제 포천지역을 예로 들면, 반경 5㎞ 내 10곳이 넘는 불법기숙사가 무더기로 있다. 경기도 전역의 불법기숙사는 약 1500개로 확인되고 있다.

김달성 목사는 “새로운 정책 시행으로 사업주들이 빌라나 아파트를 기숙사로 얻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아직도 태반은 불법 가건물을 쓰고 있다”며 “단속 및 감시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정부가 정책을 내놓고도 방기하는 꼴이 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강원 철원군이 지자체 예산으로 노동자 24명 수용이 가능한 기숙사를 짓고 있듯, 제도가 자리 잡게 하기 위한 공공의 노력이 필요하다. 가령, 기숙사를 마련하려는 사업장 대상 재정적 지원 또는 공공임대 주택 공급 등을 고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