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석 언론인.<br>
▲ 신용석 언론인.

“나는 아시아 국가 중 민주주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있네. 한국인들은 개성적이고 직설적인 성격으로 한국만이 민주주의가 가능한 나라이네. 중국이, 베트남이…? 일본이? 내가 일본 전문가이고 주일 미국 대사도 지냈고 배우자도 일본 사람이지만 일본에서 민주주의는 어려워…” 일본 도쿄에서 미국인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하버드 대학에서 일본사를 전공한 후 세계적인 일본 전문가가 된 에드윈 라이샤워(1910~1990) 박사가 1972년 하버드 대학서 수학하고 있던 한국 언론인에게 한 말이다.

▶케네디 대통령 당시 일본 주재 미국 대사로 임명되어 5년간 일본에서 외교관으로도 근무했던 라이샤워는 한국과의 인연도 오래된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로도 꼽힌다. 1938년 하버드 대학의 옌칭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한국에 왔던 그는 맥 매큔과 함께 한글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만들기도 했다. 라이샤워는 “한글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 쓰이고 있는 어떤 문자보다도 과학적인 체계의 문자”라는 말을 남기기도 한 학자였다.

▶라이샤워 교수로부터 한국만이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한 특출한 나라라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이기도 했던 말을 들었던 그 언론인은 그 후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아시아에서 한국의 특징과 예외성 같은 명제에 천착하면서 2005년도에는 <일본 친구들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저술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전문가들과 한·일 공통의 과제와 도전을 함께 찾아보기 위해 메이지(明治) 유신의 경제분야 일등 공신인 시부사와(澁澤) 가문의 장손 마사히데(雅英)와도 교류했다.

▶1993년 마사히데 일본 여자대학 이사장과 한·일 관계의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 의기투합하여 한·일 글로벌 포럼을 추진하기도 했다. 아시아와 인류의 공통과제를 우선하고 큰 과제에서 보다 원대한 혜택을 창출해보자는 발상이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일본 특유의 아집성, 고립성, 연면성의 성곽을 깨기 위해 일본 국민의 마음속으로부터의 눈물을 받아내야 한다는 의도였으나 일본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에 좌절된 이면도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믿을 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라이샤워 교수로부터 일본의 한계에 대한 소신을 들었던 언론인은 동아일보에서 논설주간을 거쳐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김진현(金鎭炫, 86)이다. 지난달 그의 회고록<대한민국 성찰의 기록>을 읽으면서 세계화에 앞장서 나갔던 선배 언론인의 성취와 좌절의 역정은 극적으로 느껴졌다. 그의 기록은 또한 반세기 전에 라이샤워 교수가 예언했던 민주화 된 대한민국의 위상과 반전을 거듭하고 있는 한일관계의 현실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653쪽에 달하는 회고록을 집필한 그의 열정에 큰 박수를 보내면서 건안과 건필을 기원드린다.

/신용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