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석 언론인.<br>
▲ 신용석 언론인.

1997년 8월6일 김포국제공항을 이륙하여 태평양의 괌 공항에 착륙중 추락하여 승객 228명이 사망하는 대형 항공 참사가 발생했다. 보잉사의 대형 여객기 B747의 추락사고 원인은 악천후, 조정사들 간의 서열 문제, 괌 공항의 시설 미비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판명되었다. 대한항공의 사고 중 필자가 35년 전 괌 공항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가깝게 지내던 홍성현 KBS 보도 본부장과 민주당 중진 신기하 의원도 가족들과 함께 희생되었기 때문이었다.

▶사고 직후 대한항공 측은 괌의 퍼시픽 호텔에 희생자들의 영정을 모셨다. 국내 언론들은 경쟁하듯 오열하는 유족들을 영상에 담고 항공사와 공항 당국을 규탄하는데 동조하는듯 열을 올렸다. 괌 공항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곳은 미국 CNN과 ABC 방송이었으나 그들은 현지 보도에서 절규하고 비통해하는 유가족들의 영상은 내보내지 않았다. 재난보도에서 사건의 진상을 냉정하고 끈질기게 보도 하는 것만이 사건의 재발을 막는 언론의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미국측이 사고를 축소하려 한다고 비판하는 촌극도 있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00년 7월25일 파리의 드골 공항에 도착 순간이 비상사태였다.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가 이륙 직후 추락해 승객 등 총 113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난 직후였다.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동안 사고를 보도하는 TV나 신문을 통해서 울부짓는 유족들의 모습은 단 한 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고 원인을 추적하는 심층보도가 연일 계속되었고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치루어진 장례미사에서 애통해하는 유족들의 모습이 나올 뿐이었다.

▶대형사고가 났을 때 유족들의 애절함이나 비통함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울부짓는 유족들과 많은 보상금 요구 등을 경쟁적으로 보도하며 사건 원인과 책임 소재를 끝까지 추궁하지 않는 것이 관행처럼 정착되었다. 미국 여성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에르하르트는 1937년 동료 비행사와 함께 세계일주 비행에 나섰다가 뉴기니아 상공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로부터 8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미국 정부와 민간단체에서는 흔적이라도 찾기 위한 수색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9일 이스탄불에서 출발한 대한항공이 엔진 고장으로 중앙아시아의 바쿠 공항에 비상착륙하는 긴박한 사태가 발생했다. 에어버스의 A330 기종으로 225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는데 2번 엔진이 심한 진동과 함께 불꽃을 일으키자 엔진 작동을 중단시킨 채 비상착륙에 기적적으로 성공한 것이다. 이 사건을 보도한 기사에는 『바다에 빠져 죽는줄 알았다』는 등 아찔했던 순간을 전하는 승객들의 말이 대부분 이었고 그 후 사고의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후속기사는 찾을 수가 없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사건보도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신용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