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팀 해체 후 제작 해보니
한국음악, 세계 주도할 미래 보여
연예인 물품 경매해 일부 기부 등
의미 부각시킬 순환구조 만들어
▲ 18일 인천 중구 인천일보에서 가수 이주노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재민 기자 leejm@incheonilbo.com

1992년 1집 앨범 '난 알아요'로 한국 대중문화를 뒤흔든 서태지와 아이들. 30년이 흐른 지금 멤버 세 명은 사뭇 다른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주노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문화 사업가로 변신했다. 결코 평지가 아니었던 그의 인생길에서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돌고 있는 것이다.

18일 인천일보 문화경영대학 강사로 나서 이런 근황과 서태지와 아이들로 활동한 지난 의미 등을 소개한 이주노 '베리컬처' 부사장을 만났다.

 

▲“지금의 케이팝, 예견했죠.”

서태지와 아이들이 지금까지도 한국 대중음악계 끼친 파급력은 상당하지만 실제 이 팀이 활동한 기간은 4년밖에 되지 않는다.

1996년 팀 해체 이후 이주노는 가수 기획과 음반 제작 같은 영역에 뛰어들었다. 직접 연습생을 발굴하고 육성해 영턱스클럽, 허니 패밀리 등의 단체가 그에게서 비롯됐다.

최고의 인기를 누린 당사자에서 기획자로 활약하던 내내 그는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세계를 장악할 수 있겠다고 내다봤다.

“90년대 활동할 때만 해도 국제무대라는 건 사실상 일본이 전부였어요. 세계 판로를 따로 상상하기 어려웠고 오히려 우리가 쫓아가는 수준이었죠. 하지만 이후 제작을 해 보고 더 넓은 시야로 보다 보니 가능성이 감지 되더라고요. 한국의 음악과 가수 자체, 문화 전반이 세계 시장에서 힘을 발휘하겠구나, 언젠가는 아시아를 주도하겠다 싶었죠.”

당시 기업 대표나 후원자를 만날 때면 그는 늘 이런 얘기를 했다. “한국의 대중문화를 지원하고 체계를 만들 수 있게 지금부터 후원하십시오. 지금의 세계 십 대들이 한류 팬이 되는 순간 10년 후엔 그들이 주축이 될 것입니다.”

그의 예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됐다. 미국 빌보드 차트에 올랐고 드라마, 영화가 글로벌 시장을 섭렵했다.

이주노 역시 케이팝 시장을 근간으로 한 콘텐츠를 개발했다. 연예인들의 물품이나 식사권 등을 경매하고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는 형태다.

“대중문화 브랜드를 가치화하고 또 일부는 우리 사회에 환원하는 순환 구조죠. 케이컬쳐(k-culture)를 매개로 그 의의를 더욱 부각하고 온정의 나눔도 하고 있습니다.”

 

▲두 아이의 아빠, 후배들에겐 순간을 기억하는 선험자 되고파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난 그는 시흥 소래종합고등학교를 다녔었다. 어릴 적부터 타고난 춤꾼이었던 그는 우리나라 '스트리트 댄스'를 정립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의 '케이팝 댄스'도 이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이주노는 '넌버벌' 형태의 작품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창작에 관여하기도 했다. 그의 독보적인 춤이 새로운 공연 문화를 만든 셈이었다.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중심에서 좋은 역할을 하기 위한 노력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영턱스클럽 같은 괜찮은 뮤지션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끝까지 이끌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부분들은 절절한 아쉬움으로 지금도 남아 있어요.”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로 가정에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그는, 같은 길을 가는 많은 뮤지션에게도 따뜻한 애정과 사려 깊은 배려를 가지려 했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 시점이 얼마나 영광이고 소중했는지는 되돌아보니 알겠더라고요. 화려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일반인보다 가혹하게 살아야 하는 연예인들을 존엄한 인간으로 바라봐 주는 시선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