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석 언론인.<br>
▲ 신용석 언론인.

지난해 가을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 초청으로 언론사 간부들과 서울 서소문로에 있는 대사 관저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오찬이 끝난 후 대사로부터 대형 판형의 230쪽에 달하는 묵직한 책자를 기념 선물로 받았다. 책 제호는 『서울의 프랑스 공관』이라는 외무성에서 발행한 천연색 고급 책자였는데 세계 각국에 있는 기념비적인 프랑스 공관을 소개하는 30여개 시리즈 중에 하나였다.

▶전직 프랑스 대사였던 파비앙 페논은 책자에 쓴 머리말을 통해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에서 재기할 무렵 프랑스 정부는 새로운 공관을 지어 프랑스와 한국의 협력관계를 재확인하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로제 샹바르 대사의 추진력에 힘얻어 1960년대 한국의 김중업(1922~1988) 건축가의 설계로 대사관이 완성되었습니다. 김중업 선생은 파리에서 3년간 르 코르뷔지에(1887~1965)와 일한 친숙한 제자이기도 합니다.』 대사관 설계를 자국의 저명한 건축가의 제자에게 맡기고 이를 한불 관계의 강화와 상징으로 승화시키는 프랑스라는 나라의 문화적 전통과 품격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필자는 프랑스에서 언론사 특파원으로 두 차례 근무하면서 파리를 위시하여 각지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의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을 여러 곳 찾아보았다. 건축에 관심있는 친지들이 프랑스에 오면 자진해서 안내를 맡기도 했는데 파리 교외의 『사보아 빌라』와 마르세이유의 『현대식 아파트』 그리고 『롱샹 성당』이 대표적이었다.

▶건축가 김중업을 처음 만난 것은 1970년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은 31층짜리 삼일빌딩이 그의 설계로 완공되었을 때였다. 대한항공에 근무하던 그의 아우 김도업씨의 소개로 젊은 신문기자였던 필자는 김중업으로부터 건축을 공학이 아닌 예술로 보는 건축관을 듣고 감명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대학에 건축공학과만이 있던 당시에 건축은 예술이고 따라서 프랑스에는 대학에 건축과가 있는 것이 아니고 건축학교가 따로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 후 김중업은 철거민 이주를 졸속 추진한 경기도 광주 대단지 계획을 비판하다가 반체제 인사로 강제 추방되기도 했다.

▶김중업을 다시 만난 것은 88서울올림픽 유치에 참여한 후 조직위원회 자문역으로 있을 때였다.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구상하면서 당시 노태우 체육장관과 박세직 조직위원장에게 건축가 김중업을 적극 천거했다. 그는 올림픽 공원에 『세계 평화의 문』을 유작으로 남기고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타계했다. 안양에 있는 김중업 건축박물관에서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6월26일까지)가 열리고 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과 르 코르뷔지에 재단의 협력으로 그가 남긴 건축 모형, 도면, 자필수첩, 엽서, 스케치, 사진 등이 전시되고 있는데 서구 근대 건축과 한국 전통 건물을 융합한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신용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