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미추홀구 숭의동 '전도관' 일대는 인천에서 '마지막 달동네로' 불렸다. 그런데 다닥다닥 붙어 있던 작은 집들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경인전철 도원역 역세권에 속한 이 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이 본격화해서다. 동네 곳곳에선 건물 철거를 앞두고 가림막 설치 등 각종 공사가 한창이다.

소싯적만 해도 전도관은 마치 지역의 '랜드마크'처럼 여겨졌다. 그만큼 규모(지상 3층, 1000여㎡)도 컸고, 근처에 많은 신도가 살며 생활을 꾸려갔다. 전도관은 1957년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에서 세운 예배당이다. 공식 명칭은 천부교이며, 1955년 박태선이 조직한 종교단체(신앙촌)다. 1987년부터는 한국예루살렘교회(현 예수중심교회)에서 사용하다 2005년 떠난 뒤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옛 전도관은 야트막한 산의 꼭대기에 있었다. 여러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정상에 자리를 잡았다. 한참동안 종교시설로 이용하던 전도관은 이젠 '흉물'로 남아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야 집도 번듯해지는데, 빈집만 수두룩한 채 '문제 동네'로 전락하면서 결국 개발의 삽날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국내에서 몇 남지 않은 달동네여서인지, 2010년대 들어선 전도관 일대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찍기도 했다.

한때 전도관 철거 결정이 나면서 지하에 매장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문화유산' 발굴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전도관이 세워지기 전, 구한말 조선에서 활동하던 미국인 의사이자 공사인 호러스 알렌(1858~1932)의 서양식 별장을 말함이다. 1897년쯤 전도관 터에 지었다고 추정되는 알렌 별장은 지상 2층의 본관과 단층의 부속 건물 두 채로 이뤄져 있었다고 한다. 알렌이 떠난 후 여러 소유주를 거쳐 1930년대엔 학교로도 활용됐다. 지역 문화·역사계에선 전도관 철거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만, 재개발조합이 아파트 분양까지 마쳐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알렌은 고종 황제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아 갖가지 이권사업을 딴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는 열강들의 이권 쟁탈전이 벌어지던 시기였는데, 알렌은 운산광산 채굴권(1895), 경인철도 부설권(1896), 전차·전등 등에 관한 전력회사 설치권(1897) 등을 얻었다. 경인철도가 알렌 별장 앞을 경유해 그를 위해 우각리역을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알렌은 22년간 한국에 머무르다가 1905년 조선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갔다.

옛 전도관 일대(6만9000여㎡)에 지하 3층~지상 29층 18개동 1705가구를 짓는 재개발 사업은 2025년 준공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도관 자체가 갖는 '기념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보존할 수는 없을까. 전도관이란 역사적 공간을 기억할 만한 전시·안내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는 방안을 찾았으면 싶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