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의 '배곧'이라는 신도시명이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은 꽤 알려져 있다. 선생은 '조선어강습소'라는 이름을 1914년 '한글배곧'으로 고쳐지었다. '배곧'은 '배우는 곳'을 당시 방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이 '배곧'이 근 100년 후 시흥의 군자매립지에 들어선 신도시의 이름이 되었다.

2012년 '배곧'이라는 지명을 강력히 주장한 인물은 우정욱 당시 시흥시 시민소통담당관이었다. (인천일보 2015년10월9일자 “시흥 배곧신도시 지명 확정 1등 공신·한글사랑 남달라”) 시흥시는 당시에 서울대학교 국제캠퍼스를 신도시에 유치하기로 약속 받은 상태였다. 우 담당관은 슬기로운 교육도시의 꿈을 담은 지명을 궁리하다가 주시경 선생의 배곧을 떠올렸다고 한다. 우 담당관은 수많은 미래의 '군자'를 배출하려면 '배곧'이 필요하다고 역설해서 결국 관철시켰다.

군자매립지의 '군자'는 시흥시 군자동·장현동·능곡동에 걸쳐 있는 군자봉에서 왔다. 군자봉이라는 산 이름은 조선 단종 임금이 지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단종은 오늘날 안산 목내동에 위치한 어머니 현덕왕후 묘소에 행차하다가 이 산의 봉우리가 연꽃처럼 의연하고 아름다워 군자의 풍모를 닮았다 하여 군자산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한다.

단종 때(15세기)면 군자봉 코앞이 바다였을 것이다. 오늘날 시흥시 포동에서 하중동에 이르는 호조방죽이 완성되어 호조벌이라는 농경지가 생긴 게 경종(18세기 초) 때이기 때문이다. 군자봉은 해발 198m에 불과하지만, 인천 앞바다에서 남양만까지 바다를 조망할 수 있고, 소래산에서 수리산까지 육지를 한 눈에 둘러볼 수 있는 봉우리다. 시흥의 드넓은 간척지는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땅이다.

군자매립지도 1984년부터 한국화약(현재의 한화)에서 폭발시험장으로 쓰겠다면서 매립을 추진한 곳이다. 그런데, 한국화약이 1991년 편법 특혜로 매립허가를 받아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시흥시민들이 치열하고 끈질기게 개발이익 환수운동을 벌였다. 마침내 2006년 시흥시가 한국화약으로부터 이 매립지를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배곧신도시는 2012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2015년 첫 입주가 이뤄졌다.

배곧신도시가 앞으로 육·해·공 무인 이동체와 바이오 인공지능 혁신 클로스터 조성 거점으로 집중 육성된다. 시대에 따라 눈부시게 변해하는 간척지의 변신이 흥미롭다. 30년 전 군자매립지 공사가 이뤄질 때는 상상도 못했을 변화다. 100년 전 군자면이라는 행정구역이 생겼을 때, 더 거슬러 올라가 단종 때는 앞으로 어디까지 간척이 이뤄질지 땅띔도 못했을 것이다. 배곧신도시의 역사에서 아직 현재잰행형인 경기만의 정체성, 나아가 경기도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코드들이 엿보인다.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