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걸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
▲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표지 사진.

마냥 뜨거웠던 10대의 그 시간들, 그냥 좋았다. 좋은데 꼭 무슨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그 대열에 함께 있었다. 마치 유행처럼 좋아하는 구절을 공책에 빼곡히 적기도 했고 서너 편 정도는 너끈히 암송하기도 하였다. 바야흐로 시(詩)의 전성시대였다.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서정윤의 <홀로서기> 등은 사춘기 감성을 여지없이 휘젓고 있었다. 감성 충만, 용기가 생긴다. 연습장이 수학공식 대신, 시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밤은 시인을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하지만 그 마법은 아침이 되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다. 밤의 끄적거림이 못내 부끄러워진다. 습작공책이 되어버린 연습장을 다시 덮는다.

첫사랑의 기억은 강렬하다. 그렇게 만났고 잊고 있었던 시와의 인연은, 나이 서른이 되어 다시 이어진다. 초임교사 시절이다. 매주 월요일이면 내가 좋아하는 시를 골라, 하고픈 이야기를 덧붙여 동료들에게 배달했다.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보냈으니 월요편지이자 아침편지였다. 이야기는 그때그때 달랐다. 그 시기에 맞는 함께 나눌 수 있는 주제들로 채워졌다.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데 시만큼 좋은 것이 없다. 시가 가지는 공감의 힘이 크기에 그렇다. 시를 나누고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가 그렇다. 그의 시 에세이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은 우리에게 인생의 굴곡마다 맞춤한 시를 전한다. 정해진 답이나 섣부른 위로 대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 책은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 등 일곱 가지 주제에 각각 생업과 노동, 아이와 부모, 몸과 마음, 교육과 공부, 열애와 동행,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가진 것과 잃은 것 등 모두 열네 가지 인생 여정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그 여정에는 신경림 등의 시 60여 편이 함께한다. 시 맛집이다. 방탄소년단의 <페르소나>나 영화 <기생충>등 대중가요, 영화, 소설 등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볼거리와 이야기가 가득하다. 저자는 독자들이 가끔 고개를 끄덕이고, 슬쩍 미소 짓다가, 혹은 눈물도 훔쳐보며, 때론 마음을 스스로 다지고 때론 평화롭게 마음을 내려놓으면 그만이라 한다. 시선이 참 따스하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온도 36.5도, 시의 체온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훌륭한 시를 읽을 때, 우리는 바로 그런 기분이 된다.” 훌륭한 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처럼 나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좀 더 나은 사람, 오늘보다 나은 내일, 모두 희망의 언어이다. 많은 사람이 희망보다 절망을 얘기한다. 삶에 지친 우리를 늘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은 마음에 품은 작은 희망 하나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헤아릴 수 없는 열정과 그리움이 있기에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좋은 시는 우리 안에 움츠리고 있는 희망이란 이름의 씨앗을 싹 틔우게 한다.

특별한 날 가장 평범한 사람을, 평범한 날 가장 특별한 사람을 떠올리자. 버킷리스트 목록을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존경한다고 말할 사람들, 너무 늦지 않게 다시 만나야 할 사람들로 차곡차곡 채워보자. 그리고 그 마음을 전하자. 그 여정에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이 함께 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이미 지나갔지만 3월 21일은 유네스코에서 정한 세계 시의 날이기도 하다. 굳이 이 책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냥 나의 마음을 오롯이 담은 시집이어도 좋다. 그리운 사람에게 시를 건네는 마음, 참 소중하고 아름답다.

▲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
▲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