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인천의 음악 역사를 훑어보면, 한국 근·현대 음악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개항(1883년) 후 국내 처음으로 서양음악 교육을 시작한 일을 비롯해 찬송가와 행진곡 등을 제일 먼저 유입한 곳이 인천이다. 인천의 교회와 학교에서 울려퍼진 종교음악은 전국 곳곳에 '클래식'씨앗을 심었다. 1885년 아펜젤러 부부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탄 배엔 피아노와 악보가 실려 있었는데, 이들은 인천에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찬송가를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일제 강점기 용동 권번에서 자란 '기생'들이 전국적인 가수로 명성을 얻은 사례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인천에 두터운 음악적 뿌리가 내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여기에 애국계몽운동에 힘쓴 교육자이자 종교인 손승용(1855~1928) 목사가 1900년대 강화도 교회 등지에서 쓴 창가집이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문화재로 등록되리란 소식이다. 손 목사 손자가 지난 16일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애국창가집'(55곡·1909~1911년 작성)은 인천 음악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손 목사 창가집이 북간도와 하와이 등지에서 벌인 애국계몽운동에 크게 활용되어서다. 손 목사는 1900년 아펜젤러(1858~1902)에게 세례를 받고 인천 제물포교회(현 내리교회), 강화 잠두교회(현 강화중앙감리교회) 등지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한국전쟁 이후엔 부평 미군부대 주변에서 서양 대중음악이 매우 번성하면서 우리 음악시장을 뒤흔들어 놓기도 했다. 로큰롤과 재즈 등 팝 송이 유행하면서 차츰 그 음악은 '한국화'를 이뤄나갔다는 게 정설이다. 한때 주한미군이 주둔했던 부평 군수지원사령부(애스컴·Ascom) 주변엔 음악 클럽이 국내에서 가장 많을 정도로 넘쳐났다. 이곳을 거쳐간 가수 중 상당수는 나중에 그 이름을 떨치며 한국 음악을 선도했다.

이처럼 인천엔 음악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런 '인천의 음악사'를 감안해 인천시는 지난 2020년 12월 음악으로 소통하며 향유하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시는 민·관 소통과 협력의 최종 결과물인 '음악도시, 인천'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시는 2021년부터 5년간 총 39개 사업에 3544억원을 투입해 3대 목표 9개 과제 추진에 나서기로 했다. 3대 목표는 '음악으로 행복한 시민', '음악으로 키우는 산업', '음악으로 활기찬 도시'이다. 음악도시로 가기 위한 첫 단추인 셈이다. 인천시교육청도 이에 발맞춰 인천 음악의 역사를 알리는 일을 지역 음악단체와 함께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음악은 우리 삶 가까이에서 어울어진다. 그래서 인천 고유의 음악 자원을 꼭 활용했으면 싶다. 성장 잠재력도 충분한 만큼, 다양하게 발전시켜 음악문화·교육·산업을 차근차근 세워야 한다. 시민-음악인-도시로 이어져, 누구나 공감하고 참여하는 음악도시를 만들어 나가자.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