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그가 수많은 소설을 쓰며 파헤치려 한 것은 인간 내면의 부조리였다. 구질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들어서는 과도기 러시아의 시대적 모순을 일관된 주제로 삼았다.

곪은 사회의 인간 병리를 직시하고 불편하리만큼 생생히 묘사했다는 점에서 그는 일생을 거쳐 '넋의 리얼리즘'을 추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도스토옙스키 문제의식의 절정은 <죄와 벌>에 잘 드러난다.

1860년대 페테르부르크 지방 소도시 출신의 청년 라스콜니코프는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하고 방에 틀어박혀 자신만의 완벽한 계획을 세운다. 어느 날 그는 머릿속으로 구상한 계획에 따라 전당포 노파와 그녀의 이복여동생을 도끼로 살해한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완전 범죄였지만 예심판사는 그의 심리를 꿰뚫으며 압박해 온다. 물증이 없는 판사는 주인공과 세 차례에 걸쳐 논쟁을 벌이지만 끝내 결판이 나지 않는다. 이성과 관념만이 가득했던 라스콜니코프의 마음에는 조금씩 불안이 생기고 그런 와중에 소냐라는 여성을 만나며 사랑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어떤 이들이 인류의 행복을 위해 쓸모없거나 더 나아가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라고 규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천했다. 작품은 내내 이 사내의 번민과 죄의식의 실체, 속죄의 서사를 쫓는다.

<죄와 벌>을 통해 도스토옙스키는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명제를 던졌다. 악한 과정에 부여되는 면죄부를 과연 누가 얻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런 그의 질문이 지금 2022년에 와서 새삼스레 닿는다. 그의 조국 러시아에 말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보름이 넘었다. 미사일로 공습하고 지상군을 투입해 우크라이나 내 다수의 군사시설이 파괴됐다. 지금까지 발생한 난민은 250만명에 달하고 계속 불어나고 있다. 소중한 터전에서 도망쳐야 하는 우크라이나 국민 가운데 민간인 570여명이 죽었다. 이 중 50여명은 어린이다. 부상자는 1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북대서양 방위 조약 기구 나토(NATO)에 가입하는 것을 막으려고 쳐들어갔다. 우크라이나의 시도가 서부 국경에 미국이나 유럽의 군사배치를 의미할 수 있다는 명분을 들었다.

우크라이나를 영원한 속국으로 두고 싶어하는 러시아의 속내를 모를 리 없지만 대의명분으로 내세운 전쟁 이유조차도 빈약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이유야 뭐가 됐던 무력으로 시민을 해쳐 원하는 바를 이루겠다는 발상이 21세기 현대에 실재가 되었다는 놀라운 광경을 모두가 목도하고 있다.

<죄와 벌>의 주인공 역시 지금의 푸틴처럼 “정의와 개혁을 위한다면 장애를 뛰어넘을 권리를 갖고 있다”고 여겼다. 이 신념으로 살인했다. 그러나 작가는 주인공에 처절한 최후를 맞게 하며 '악의 과정'은 인정받을 수도, 정당화될 수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악을 벌한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난 지 올해로 200년이 되었다. 무엇이 회복할 수 없는 죄인 지 이미 알고 있었던 그가 지금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를 본다면 어떨 것인가.

내부 결속과 대통령 장기 재집권일지도 모르는 파렴치한 목적을 위해 한 국가의 영혼을 스러지게 한 죄의 대가를 예견하고 있을까. 아니면 그의 선험적인 충고를 꿰뚫지 못한 고국을 탄식할까.

확실한 건 러시아의 정신이나 다름없는 작가가 2세기 전 쓴 글의 넋이 이렇게나 지독한 리얼리즘을 갖춘 채로 이 나라를 돌아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지혜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