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196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의 중편소설 <설국(雪國)>의 첫 문장이다. 2차대전 후 경제부흥기를 거쳐 1964년 도쿄 올림픽,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 그리고 1974년 사토 에이사구(佐藤榮作)의 노벨 평화상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은 일본인에게 2차 대전의 전범(戰犯)을 벗어나 세계 일류국가로 당당하게 진입한다는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설국>의 무대인 니가타(新潟)현의 유자와(湯沢) 온천을 처음 찾았던 때는 70년대 중반이다. 당시 언론사의 프랑스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루브르 박물관 소장 작품전을 서울에서 개막하고 파리로 귀임할 때 동행했던 루브르의 학예관이 일본을 경유해서 몇 군데를 가보고 싶다고 했을 때였다. 과연 <설국>의 무대 유자와는 눈의 고장이었다. 사람 키보다도 높이 쌓인 눈 사이로 길을 내어 왕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후 일본여행 때 니가타현을 자주 들르면서 유자와 온천뿐 아니라 에도시대 영주가 살던 다카오카(高岡)시와 현청이 있는 니가타시, 그리고 연어가 많이 잡히는 무라카미(村上)시 등을 여러 차례 찾아볼 기회가 있었다. 반세기 가까이 니가타를 찾으면서 우리나라의 애주가들에게도 잘 알려진 일본사케 구보다(久保田), 코시노칸바이(越乃寒梅) 그리고 핫카이산(八海山)을 마시며 눈 녹은 양조수와 고시히카리라는 쌀에서 나오는 중후한 향기가 입안을 채우는 숙성감도 맛볼 수 있었다.

▶일본인에게 니가타는 눈과 사케의 고장이기도 하지만 전후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1918~1993)의 고향으로 각인되어 있다. 1947년 정계에 입문하여 재무장관과 집권당 간사장을 맡다가 수상 자리까지 오른 다나카는 고속 전철의 니가타 연결은 우선순위에 어긋나는 게 아니냐는 반론에 고향 니가타까지 고속철을 하루라도 빨리 완공하기 위해 정치판에서 고생했다고 대답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니가타현 사도(佐渡)섬의 광산은 에도시대부터 본격적인 채광이 시작되어 1989년 폐광될 때까지 금과 은을 생산한 오랜 역사를 지닌 광산으로 현지 주민의 청원을 검토한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신청을 결정했다. 우리나라 시민단체와 학계에 이어서 정부도 유네스코에서 한국인 강제노역 사실을 적시하지 않은 등재신청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한경구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은 “평상시에는 조용하다가 불나면 끄러 가는 '소방외교'로는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강제노역 역사를 은폐하고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행태가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지 않는다는 점을 회원국들과 함께 항시 강조해야 한다”고 했다.

/언론인 신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