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

한동안 “선생님께 경례!”는 대표적 학교 내 구호였다. '경례'는 일본식 용어로, 일제가 이 땅에서 물러가고도 장기간 마치 우리말처럼 쓰였다. 지금은 순화에 들어가 '인사'란 말로 대체되고 있다. 이처럼 일제 강점기가 끝난 지 오래 됐음에도 우리 생활 곳곳에선 일제가 남기고 간 흔적들이 판을 친다. 아직도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각 분야에서 보이는 일제 잔재는 수두룩하다.

이런 일제 잔재는 특히 교육 현장에서 흔히 드러나 경각심을 던져준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은연중 역사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우리가 별로 개의치 않고 부르는 유치원(幼稚園)이란 용어도 사실은 일본식 용어다. 일본학자들이 독일어 킨더가르텐(Kindergartedn)을 번역한 말로, 일제 강점기 때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유치'란 단어엔 '나이가 어리다'란 의미와 함께 '수준이 낮거나 미숙하다'는 뜻도 담겼다. 그만큼 교육기관 명칭으론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는다.

학교장이 하는 '훈화'(訓話) 역시 교육 현장에서 널리 쓰이는 일본식 조어 중 하나다. 학교에서 '구령'에 맞춰 단체로 인사하거나 '조회'를 여는 일도 그렇다. 일제 문화 영향으로 남아 있던 '국민학교'란 명칭은 1996년 3월부터 '초등학교'로 바뀌었고, 이제는 완전히 정착했다. 2002년부터는 국기를 액자에 넣어 걸었던 '태극기 액자'가 사라졌다. 액자형 태극기가 일제 잔재란 이유에서다. 최근 들어선 이렇게 광범위하게 퍼진 일본 문화의 찌꺼기를 없애려는 활동이 각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교육 현장에선 각 시·도교육청이 친일 인사 작사·작곡 교가를 전수 조사하고 바꾸도록 했다. 학생생활규정 속 문구도 지우고, 방위·순서 표시가 들어간 학교 이름도 교체 대상이다.

요즘 인천지역에선 일제 영향이 뚜렷한 학교 내 조형물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들 조형물은 곧 철거되거나 역사교육 교재로 활용될 전망이다. 인천시교육청은 지난 2020년 초·중·고교와 특수학교 523곳을 기초 조사한 결과 일제 잔재로 추정되는 7개 조형물·동상 등을 확인했다. 이들은 일본 천황을 섬기는 신사 조형물이나 친일인사를 기리는 동상이다. 학교 신축 공사 당시 세워진 머릿돌(정초석)과 기념비 등도 있다. 시교육청은 철거, 안내판 설치, 역사교육 교재·프로그램 개발 등의 방안을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오는 4월부터 본격적인 청산 절차에 나선다.

일제 잔재 청산은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시작돼야 한다. 워낙 뿌리가 깊어 쉽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고쳐나가야 할 일이다. 일제가 퍼뜨린 용어와 조형물 등을 우리것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비록 녹록치 않은 작업이라 해도, 꼭 대안을 마련해 우리 문화를 곧추세워야 할 터이다.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공감하는 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