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삼일중학교 아담스기념관은 수원 교육 100년의 상징이다. 이 붉은 벽돌 건물은 미국 아담스교회 교인들의 성금으로 1923년 단정하고 단아하고 단단하게 지어졌다. 수원에 붉은 벽돌 근대 건축물이 전혀 없던 시절이라 근동 사람들이 신축 삼일학교의 본관을 구경하러 일부러 찾아오는 명물이었다.

당시 국내 붉은 벽돌 생산 수준이 미미했으므로, 중국인 공사감독이 중국 벽돌을 들여다 지었다. 적벽돌 통계를 보면 1920년대까지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국내 생산량은 1930년대 중반이나 되어서야 늘어난다. 그래도 붉은 벽돌은 비싼 자재여서 고급 건축물을 짓는데 주로 쓰였다.

벽돌이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춘 시기는 1960년대 산업화가 본궤도에 오르고 나서다. 당시 공장들은 호프만가마로 벽돌을 구워냈다. 1961년 더 싸고, 더 효율적이며, 더 품질이 좋은 벽돌 생산을 가능하게 해주는 터널가마가 등장했다. 하지만 터널가마가 이미 가동 중인 호프만가마를 완전히 대체하는데 25년 정도 걸렸다. 마침내 1985년 무렵 수원 고색동의 영신연와 공장 한 곳만 남기고 전국의 호프만가마는 모두 사라졌다.

“2020년에 <벽돌공장 영신연와>라는 책을 냈어요. 1960년대에 영신연와 공장이 생길 때부터 1980년대 말 문을 닫을 때까지 관계자들, 지역 주민들 구술을 최대한 받았지요. 호프만가마에 대해서는 문헌조사와 실측을 정확하게 해서 기록했어요. 책 내고 얼마 있다가 미얀마에서 전화가 왔어요. 책을 구하고 싶다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호프만가마를 이제 쓰지 않기 때문에 세세한 자료를 얻을 수 없는데, 이 책에 실려 있다고 들었대요. 자기네 나라 수준으로는 호프만가마가 맞는 방식이어서 배우고 싶다나요.” 조사와 집필을 맡았던 연구원들(홍현영·류현희)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다.

오는 14일부터 수원시청 1층 로비에서 영신연와 관련 특별전시회가 열린다. 사진·삽화·동영상을 시민들이 직접 보고 영신연와 굴뚝과 호프만가마, 기숙사 등 남은 시설 보존여부를 직접 판단해보라는 취지다. 전시회를 주최하는 '영신연와 지키기 수원시민모임'은 2012년부터 10년 넘게 보존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건축학자와 역사학자 등 근대문화유산 전문가들은 영신연와를 보존해야 한다는 쪽으로 이미 기울어 있으나, 개발이냐 보존이냐 아직 확실한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신연와는 서수원 사람들에게 특별한 추억이 깃든 장소이자, 수원의 산업화를 상징하는 공간 중 하나다. 서수원의 랜드마크였던 아파트 10층 높이 영신연와 굴뚝 등을 보존해 산업박물관으로 새 단장하는 게 맞다. 특례시이자 문화도시인 수원에 그만한 역량이 없겠는가.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