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

계급도 군번도 없는 비정규군. 한국전쟁 중 적진에 침투해 첩보 수집, 후방 교란, 양민 구출 등의 특수 임무를 수행했다. 켈로(KLO)부대를 이르는 말이다. 1949년 주한미군이 창설했다. 미 극동군사령부 직할인 '주한 연락처(Korea Liaison Office)'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명칭이다. 만들 무렵엔 북한 출신으로 채워졌으나, 한국전쟁 중 사망자와 실종자 증가에 따라 남한 출신도 뽑았다. 전체 대원 중 20% 가량은 여성이었다.

이 켈로부대와 인천상륙작전은 떼려야 뗄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측 3명과 미군측 3명의 켈로부대원은 북한군 점령 팔미도 등대를 탈환하고, 결국 디데이(d-day)인 9월15일 등대불을 밝혔다. 이로써 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끄는 전공을 세웠다. 어민으로 가장한 이들은 북한군 설치 기뢰를 찾아내는 동시에 연합군 군함이 무사히 인천에 진입할 수 있도록 바다 상태와 항로 수심을 측정하는 임무를 띠었다.

켈로부대 활동은 당시 군사기밀로 취급됐다. 정전협정 이후에도 미군 당국이 2급 비밀로 분류해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부대 해체 후 '군번 없는 군인'이었던 대원 중 일부는 병역기피자로서 군복무를 다시 하는 등의 고초에 시달리기도 했다. 개별적 기록이 확인된 이를 제외하곤 참전 유공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랬던 이들에게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한국전쟁 때 활약한 켈로부대 등 비정규 특수부대 대원과 유족들에게 처음으로 공로금을 주라고 결정된 것이다. 국방부는 지난 23일 켈로부대원과 유족 등 공로자 160명(본인 143명, 유족 17명)에게 총 15억7000만원의 공로금 지급을 의결했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비정규군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볍에 따른 첫 보상 조치의 일환이다. 비정규군은 1948년 8월15일부터 1953년 7월27일까지 적 지역에 침투해 갖가지 작전을 펼친 조직, 또는 부대에 소속된 사람을 뜻한다. 공로금은 1인당 1000만원 안팎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7년 켈로부대원도 정부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거나 별도 법률을 세우라고 국방부 장관에 권고한 바 있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해 4월 '6·25 비정규군 보상법'을 제정했다. 국방부는 내년 10월까지 신청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다. 대상 대원은 1만8000여명에 달하며, 이 중 생존자는 3200여명이다.

어느 나라든 마땅히 국가를 위해 헌신·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사업을 진행한다. 우리는 여태 이를 방치해 오다 뒤늦게나마 '보상'이란 꼬리표를 달았다. 대상자들은 대부분 80대 후반으로, 이제 살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를 감안해 일을 신속히 처리해야 함은 물론, 비정규군의 명예를 회복하고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사업을 하루빨리 마련했으면 싶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