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역할 수 없는 역사 물줄기, 그리고 연대

스페인 내전 겪은 주인공들이
파시즘 광풍 피해 칠레로 망명
한 가족의 감동적 대서사시
▲ 이사벨 아옌데 지음, 민음사, 476쪽, 1만7000원

내전으로 얼룩진 스페인에서 시작해 망망한 대양 넘어 칠레와 남아메리카에서 마무리되는 한 남자와 한 여자, 한 가족의 감동적인 대서사시. 라틴 아메리카 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새 책 <바다의 긴 꽃잎>이 출간됐다.

스페인 내전을 겪은 주인공들이 파시즘의 광풍을 피해 세상 건너편 칠레로 망명을 떠나 그곳을 또 다른 고향으로 받아들이고 뿌리를 내리는 기나긴 여정이 작가 특유의 매혹적인 문장으로 펼쳐진다.

'바다의 긴 꽃잎'은 칠레의 국민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 <언젠가 칠레>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하얗고 새까만 거품을 허리띠를 두르고, 바다와 포도주와 눈(雪)으로 이뤄진 기다란 꽃잎”으로 시인과 이사벨 아옌데의 조국 칠레를 가리킨다.

이번 소설은 실존 인물 빅토르 페이 카사도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의 생애와 허구의 이야기를 엮었다. 아옌데 자신 역시 주인공처럼 피노체트 군부독재를 피해 베네수엘라로 망명을 떠나야 했던 경험이 있어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이방인의 아픔과 비극적인 역사의 상처를 더없이 생생하게 그려 냈다.

소설은 여기 머물지 않고 역사라는 거역할 수 없는 물줄기와 고난 속에서도 우리 인간을 버티게 해주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연대에 관해 이야기한다. 숨통을 죄어오는 파시즘을 피해 칠레로 망명해야 했던 2000여 명을 오로지 형제애로 환대한 스페인 영사 파블로 네루다와 칠레 국민이 주인공이다.

망명객으로 칠레로 건너가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피노체트 군부의 쿠데타와 독재에 맞서 다시 한 번 싸움에 뛰어든 주인공 빅토르의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는 자신이 내밀었던 환대와 연대의 손길이 삶과 역사라는 시간 속에서 다시 돌아오고 서로의 존재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