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

1998년 6월29일 금융사상 초유의 결정이 내려졌다. 경기·대동·동남·동화·충청 등 5개 은행에 대한 퇴출이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이날 그렇게 확정하고 우량은행으로의 자산부채 이전을 명령했다. 퇴출은행과 인수은행 간 짝짓기는 경기-한미, 대동-국민, 동남-주택, 동화-신한 등으로 이뤄졌다. 금융당국은 자기자본 비율 8% 미만인 지방은행을 부실은행으로 간주했다. 곳곳에서 비명과 울분이 터져 나왔음은 물론이다.

인천·경기 자금줄 역할을 해온 경기은행의 퇴출로 지역경제는 벼랑 끝에 섰다. 2000여명에 달하는 경기은행 직원과 거래기업 도산에 따른 실업자 발생 등으로 지역사회의 위기는 심각했다. 당시 경기은행의 자금거래 상황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경기은행과 거래 중인 중소기업이 2만6000여곳에 이르고, 규모는 4조원대로 총대출액 6조원의 70%를 넘었다. 실제로 중소기업들은 은행업무를 중단해 어음할인 등을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인천·경기지역 각계에선 그동안의 '경기은행 살리기 운동'이 물거품으로 변했다며 충격과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기대를 짓밟은 퇴출이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지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중앙정부의 자금동원 창구로 이용하다가 하루 아침에 지역은행을 거두어갔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경기은행은 1969년 12월 인천을 연고로 한 ㈜인천은행으로 출발했다. 1972년 6월 영업구역을 경기도로 확대하면서 ㈜경기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과정은 순조로웠다. 1974년 10월 '제11회 저축의 날' 행사에선 최우수 저축기관으로 선정됐고, 1979년 7월 총예수금이 1000원을 돌파했다. 1985년 12월에는 총수신이 5000억원을, 1988년 8월에는 1조원을 넘어섰다. 1991년 11월엔 미국 뉴욕사무소를 열었고, 1992년 1월 중구 사동에서 남동구 구월동(사옥 신축)으로 본점을 이전했다.

최근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은행 설립 논의가 일어 주목된다. 특히 남북경협을 대비하고 녹색기후기금 등이 있는 인천으로선 눈이 번쩍 뜨일 일이다. 얼마 전엔 한 대통령선거 후보가 인천은행 설립 가능성을 언급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외환위기 무렵 없앤 지방은행을 새로운 각도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천의 경우 경제자유구역 지정 이래 동북아 경제 중심도시로 부상했고, 공항과 항만이 존재하는 인구 300만명 도시인 만큼 지방은행을 세울 자격이 충분하다.

이제 논의에만 그치지 말고 지역 민간자본 중심의 지방은행 설립을 본격화해야 할 시점인 듯싶다. 그 이유는 국내 재투자와 은행의 공공성 강화를 비롯해 지역 자본의 역외유출을 막고 산업의 균형 발전과 일자리 창출 등을 꾀할 수 있어서다. 인천을 기반으로 한 지방은행 신설에 대해 각계의 관심과 성원이 필요한 때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