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위원
 

 러시아 도핑 스캔들의 후폭풍은 아직 진행형이다. 2019년 12월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조직적 도핑에 관여한 러시아에게 4년간 국제 스포츠대회 출전 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번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도 러시아는 국적 팀으로의 출전이 금지돼 ROC(러시아올림픽위원회) 소속으로 경기에 참가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도 캐나다 벤 존슨이 금지약물 복용으로 남자 100m 육상 결승에서 딴 금메달을 미국 칼 루이스에게 넘겨야 했다. 세기의 대결로 회자됐던 세계신기록은 오염된 스포츠 역사로 남았다. 유희적 본능에서 출발한 스포츠가 과열된 경쟁으로 퇴색된 결과를 낳았다.

▶네덜란드 역사가인 요한 호이징가는 인간 이해를 놀이에서 찾았다.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은 놀이의 즐거움과 규칙, 질서의 효용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오락이나 유희에 그치지 않는 운동경기는 경쟁의 상징으로 심화됐다. 규칙을 벗어난 스포츠는 승부를 뛰어넘어 전쟁의 양상이 된다. 스파르타는 신체단련으로서 밀고, 잡고, 부딪히고, 속여 군사적 목적을 달성했다. 베이징 빙판에서도 '블루투스 터치', '할리우드 액션', '나쁜 손' 등이 등장해 스포츠의 일탈을 경험했다. 동일한 조건에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고 상대방을 정중하게 대할 때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 발휘된다.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초반부터 공정한 경쟁, 명예로운 승리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를 남겼다. 페어플레이는 공정한 게임의 정신이다. 공정은 인간의 삶에서도 중심에 있어야 할 기본적인 태도의 범주다. 교육에서 학생들의 공정한 경쟁, 공정한 선거, 공정한 분배, 공정한 도덕적 대우 등은 스포츠 게임의 공정정신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스포츠는 보상보다는 명예를 앞세우고, 단순한 오락이나 유희를 넘어 고도의 기량을 나누는 인류의 동반자가 돼야 한다. 하지만 승부에 몰입한 전장의 적대자가 곳곳에 있다. 훌륭한 스포츠맨을 상징하는 신사(紳士), 기사(騎士)를 갈망한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은메달 이상화를 위로한 일본 고다이라 나오의 우정은 지금도 감격의 한 장면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마오쩌둥(毛澤東)은 '선(先) 우정, 후(後) 경쟁'을 강조했다. 하지만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린 올해, 한·중수교 30년을 맞아 돌아온 건 반중 정서의 최고점이다. 올림픽경기는 기원전 776년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우스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축제였다. 선수들이 부정 출발하면 매질을 가했다. 공정이 생명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대통령 후보들의 경쟁 또한 공정을 확인하는 페어플레이, 스포츠맨십에 있다.

/김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