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평양 모란봉공원에서 일본제 철새 연구용 고리가 채워진 쇠찌르레기가 발견된다. 여름 나그네새의 이동경로를 잘 아는 북한의 조류학자(원홍구)가 이를 이상히 여겨 일본으로 편지를 보낸다. 수소문 끝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고리는 연구소가 남한에 주었던 것이고, 새에 고리를 채운 장본인은 바로 그 북한 조류학자의 아들(원병오)이었다. 냉전의 절정기서 벌어진 실화다. 북한 작가 림종상은 이 이야기를 1990년 <쇠찌르레기>라는 소설로 발표했다.

'휴전선 위를 자유로이 날아 넘나드는 새'라는 이미지를 본지 오래다. 의미가 다 닳아 진부해진 걸까? 모르겠다. 서울 청량리의 쇠찌르레기가 훌쩍 평양 상공까지 날아가 놀다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지금 다시 읽어도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해마다 남쪽으로 날아와 겨울을 나고 가는 두루미들을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다.

두루미는 전 세계에 15종이 있고, 우리나라로 날아오는 종류는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등 7종정도인 겨울 나그네새다. 두루미와 재두루미는 강원도 철원, 경기도 파주와 연천 그리고 인천 강화에 와서 쉬어 가거나 겨울을 나고 간다. 흑두루미는 주로 전남 순천만으로 날아온다. 두루미 종류는 대부분 멸종 위기에 몰려 있어서, 개체수가 좀 많아지거나, 간혹 새로운 종이 눈에 띄면 매스컴을 탄다.

1970년대만 해도 한강 하구, 그러니까 고양 김포와 인천 쪽 습지로 찾아오는 두루미 개체수가 상당했다. 1980년 무렵 인천시가 두루미를 시조(市鳥)로 삼은 연유다. 더 전엔 철새 이동경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전역의 습지에서 두루미 종류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산업화 과정에서 습지를 메워버리고, 갯벌을 없애버리니 두루미는 터전을 잃었다. DMZ 습지 덕에 그나마 지금의 개체수를 겨우 유지할 수 있다.

2010년 연천 임진강 상류에 군남댐을 건설하기로 했을 때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댐 위쪽 두루미 서식지가 수몰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두루미생태공원을 조성하는 것으로 타협이 이루어졌으나, 댐 건설 이후 수자원공사가 대체서식지 조성 등 약속을 지키지 않아 두루미가 사라진다는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최근엔 철새 관찰하라고 만든 탐조대에 사진작가 등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는 바람에 두루미가 떠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두루미는 번식과 월동을 위해 몽골 러시아 중국 북한 남한 일본에 걸친 동아시아 루트를 오간다. 두루미가 행복하도록 이들 나라가 국제 네트워크에 협조하면, 두루미는 반드시 동아시아에 행복을 물어다 줄 게다. 두루미는 월동지가 맘에 들면 다른 동료들을 불러오는 경향이 있다. 지난주 발족한 인천두루미네트워크의 활약을 기대한다.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