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

“냉면은 평양이 원조라고 하지만 인천 것을 못 따랐다.” 인천의 원로 언론인 고일 선생이 1955년 집필한 '인천석금'에서 '인천냉면'을 찬양한 글이다. 일부 평안도민은 개항 이후 인천으로 내려오면서 평양냉면을 함께 전파했다. 그리고 점차 지역 특색을 가미한 인천냉면으로 거듭났다. 이런 인천의 냉면 맛은 소문을 타고 경성에까지 알려졌다. 서울 식도락가들이 인천에 전화로 냉면을 주문해 자전거로 배달했다는 사진이 남아 있을 정도다.

동치미 국물을 주로 쓰던 평양냉면과 달리 인천냉면은 소뼈나 소고기를 푹 고아낸 육수로 깊은 맛을 더했다고 한다. 어업이 발달한 인천엔 특성상 생선 냉동을 위한 얼음공장이 많았다. 그래서 여름에 차가운 육수를 유지할 수 있었고, 냉면이 사계절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계기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몇몇 냉면집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한다. 맛에선 큰 차이를 보이지만, 그나마 동구 화평동엔 그릇이 크다는 의미의 '세숫대야 냉면' 거리가 있어 여름철마다 손님을 끈다.

한국인이 즐기는 짜장면과 쫄면이 인천에서 국내 최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이제 진부하기까지 하다. 인천항 개항 이후 항만 노동자들은 값싸고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짜장면을 꼽았다. 1908년 산동회관이란 이름으로 개업하고 4년 뒤 개명한 공화춘(共和春)에서 처음 개발했다. 저렴하지만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점점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끈 짜장면은 인천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1970년대 초 인천에서 등장한 쫄면은 입맛을 사로잡는 쫄깃한 면발과 매콤새콤한 양념으로 유명하다. 중구 경동의 '광신제면'은 우연한 계기로 쫄면을 만들었다. 과거 냉면발 주문이 밀려 바쁜 와중에 면을 뽑는 사출기 조작 실수로 굵은 면발이 나온 게 쫄면의 시작이었다.

중구 경동에서 지난해 7월 '누들(noodle) 플랫폼'이 문을 열었다. 지상 3층·지하 2층 규모의 플랫폼 1층 전시관에선 짜장면·인천냉면·쫄면·튀김우동 등 인천에서 태어난 면 요리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2층엔 소극장과 컵누들 만들기 체험공간이 자리를 잡았다. 중구가 이런 국수류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사업을 벌여 관심을 모은다. 구는 1월18일부터 3월17일까지 이 플랫폼에서 '누들스쿨 인큐베이팅'을 진행한다. 인천시 '상생협력 특화일자리 사업' 공모에 선정된 후 기존 상점주·예비창업자·학생 등을 대상으로 맞춤형 이론과 실습 등에 힘을 쏟는다.

인천은 짜장면과 쫄면 등 대중면의 발생지다. 그 역사성과 장소성을 잘 살려나가 인천의 맛과 멋을 널리 알려야 할 당위성이 있다. 면에 얽힌 역사를 흥미롭게 엮어 인천의 음식문화를 전승하려는 노력이 한층 더 이뤄졌으면 한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