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할리우드의 전성기에 오드리 헵번, 마릴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함께 인기를 누렸던 그레이스 켈리는 우아하고 기품있는 외모와 세련된 패션 스타일로도 유명했다. 영화배우로 절정기에 있던 켈리는 히치콕 영화 '나는 결백하다'의 화보 촬영차 모나코에 갔다가 레이니어 3세 모나코 공(公)을 만났다. 레이니어 공은 12캐럿 다이아몬드를 선물하면서 끈질기게 구애를 계속했다.

▶1956년 4월18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레이니어 3세와 그레이스 켈리는 무려 일주일간 계속된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후 그레이스 공비가 되었다. 그녀가 프랭크 시내트라로부터 2달러짜리 지폐를 선물 받고 왕비가 되어 2달러 지폐는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켈리 공비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몇 차례 유산을 거듭한 후 카롤린 공녀가 탄생하여 프랑스에 합병될 위기를 넘겼고 모나코에는 미국인 관광객이 폭증했지만, 켈리 공비는 모나코 왕실의 기품을 지켜야 되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자녀들의 탈선도 그녀를 우울 증세로 몰고 갔다.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와의 세기적인 결혼식도 화제였지만 자녀들의 자유분방한 생활도 모나코는 물론 프랑스 매스컴의 단골 메뉴였다. 스테파니와 카롤린 공녀의 데이트도 유럽의 신문과 잡지의 재미있는 사진과 기사 자료였다. 당시 파리에서 언론사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간혹 모나코로 취재를 갈 때 모나코 사람들에게 왕실의 크고 작은 스캔들이 민망스럽지 않냐고 물어보곤 했다. 그러나 모나코 시민들의 응답은 한결같았다. 왕실이 없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왕가에도 일반 시민들이 겪는 희로애락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위로를 주는 '왕실 취미'를 모나코 왕실이 대행하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유럽뿐 아니라 세계의 대표적인 왕실은 영국 왕실이다. 그레이스 켈리보다 꼭 10년 앞서 그리스와 덴마크 왕위 계승권자인 필립공과 세기의 결혼식을 거행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 후 네 남매를 비롯해 8명의 손자와 5명의 증손자를 두었고 지난해 4월 필립공의 서거로 홀몸이 되었다. 그러나 모나코 왕실과는 달리 필립공과의 73년간에 걸친 결혼 생활을 원만하게 유지해 온 여왕은 지난해 성탄절을 기해 “첫 만남이 있으면 인생에는 마지막 이별도 있게 마련”이라며 외로움을 달랬다.

▶다이애나와 비극적으로 결혼을 마감한 찰스 왕세자에 이어 지난주 아끼던 차남 앤드루 왕자의 왕실 직함과 '전하'라는 호칭도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그동안 앤드루 왕자는 지난 2001년 미국의 억만장자 엡스타인과 당시 17세의 미성년이던 버지니아 주프레를 여러 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미국 뉴욕주 연방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내달 여왕 즉위 70주년을 앞두고 홀로된 엘리자베스 여왕은 95세의 나이에도 영국 왕실의 아픔과 굴욕을 극복하기 위해 진력중이다.

 

/신용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