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은 삶의 활력소이자 자양분이다. 우리는 여유로운 생활을 하거나 몸과 마음이 지칠 때 문화예술 현장을 찾곤 한다. 예로부터 '문화'의 뜻은 너무 방대해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고, '예술'도 역시 그 맥을 같이한다. 문화예술을 말할 때 좁게는 음악·미술·문학·연극·영화·드라마 등을 지칭한다. 공통의 선과 미의 추구란 점에서 오랫동안 함께 쓰기도 했다.

인천의 문화예술이 꽃을 피웠던 시기는 개항(1883년)과 맞물려 있다. 외국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새로운 문화와 예술 형식도 더불어 도래해 기지개를 켰다. 실례로 1895년 국내 최초의 공연장인 협률사(協律舍)가 지금의 중구 경동에서 문을 열었다. 협률(協律)은 '음악과 조화를 이룬다'는 뜻으로, 오늘날 '공연'을 의미한다. 협률사는 개항 이래 격동의 시간을 거치며, 지역 근대 문화의 터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인천 문화예술의 태동기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처럼 활발했던 인천지역 문화예술은 해방 후 오히려 내리막길을 걷지 않았나 싶다. 한국전쟁 인천상륙작전 때 유명한 상당수 건물이 파괴되면서 공연을 벌일 변변한 장소 하나 찾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서울 중심 문화예술 추세가 두드러졌다. 지역에선 보기 힘들어도, 서울에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현상은 한동안 인천을 '문화 불모지'란 오명을 듣게 했다.

인천시 당국과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자각'은 그래서 나왔다. 뒤늦게나마 문화예술을 종합적으로 다룰 건물을 짓자는 방안을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1994년 4월 인천문화예술회관(남동구 구월동)이 탄생했다. 인천의 중심적인 다목적 공연장으로,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다. 4개 전시장과 회의장을 갖췄으며, 4개 인천시립예술단(교향악단·합창단·무용단·극단)이 상주한다. 끊임없는 공연과 전시 등은 관객들을 불러모으기에 충분했다. 가동률이 80%(전국 평균 58.2%)에 이를 정도다. 인천의 대표 복합문화공간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은 '센터'이다.

그런데 개관한 지 30년 가까이 되다 보니, 각종 시설의 낙후화가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무대시설과 건축설비 등의 노후화에 따라 안전성과 전문성 개선이 시급해졌다. 안전점검 결과 부분적·일시적 보수론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회관측은 그러께 리모델링 계획을 수립했다. 개관 28년 만에 전면적인 복구에 들어가, 2024년 8월까지 문화예술회관을 현대적 감각의 공연·전시장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다.

인천문화예술회관은 훌륭한 '장소성'을 자랑한다. 번화한 도심에 위치해 교통편이 편리하다. 접근성이 매우 좋아 시민들이 쉽게 자주 찾을 수 있는 문화예술 일상화의 최적 입지를 갖춘 곳이다. 리모델링을 통해 공연예술의 산실로 거듭나 인천의 중추적 문화공간 역할을 수행해 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