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병을 앓으니 서로 불쌍히 여기고, 같은 걱정이 있으면 함께 돕는다네. 놀라서 날아오르는 새들은 어우러져 날아가고, 여울을 따라 흐르는 물은 서로 합쳐져 다시 흐르네.”

중국 춘추시대 정치가 오자서(伍子胥)가 인용한 하상가(河上歌)란 노래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성어가 나온 배경이다. 유래는 이렇다. 오자서가 오나라에 망명해 있을 때, 백비도 오에 몸을 의탁한다. 그때 피리란 대신은 “백비는 믿을 만한 인물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오자서는 “그의 아버지도 내 아버지처럼 모함으로 돌아가셨소. 하상가에 '같은 병은 서로 불쌍히 여기고(同病相憐), 같은 근심은 서로 구원한다(同憂相救·동우상구)'란 구절이 있지요. 그를 돕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소?”라고 답한다. 백비는 결국 피리의 예언대로 적국 월나라 뇌물에 매수돼 오자서를 배신했다. 이로 인해 오 멸망에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으며, 이에 오자서는 분을 못 이겨 자살하고 말았다.

우리 속담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알고,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 곤란함을 겪는 이를 파악하는 힘은 직접 그 일을 당해 보았거나, 그와 비슷한 형편을 만나야 생길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른다. 외롭고 쓸쓸한 과부와 홀아비는 딱한 상대방의 처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빈자(貧者)의 일등(一燈)도 떠오른다. 부처님 시대에 가난한 늙은이가 정성을 다해 올렸던 작은 등불 하나가 꺼지지 않고 온 밤을 밝혔다는 얘기다. 새해 초부터 우리 사회엔 자신이 어려워도, 불우이웃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줄을 잇는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성금을 전달하는 이도 상당수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훈훈한 미담은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란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이 아무리 메마르고 강퍅하다 할지라도, 서로 보듬고 나누는 삶은 우리에게 희망을 선사한다.

십시일반(十匙一飯)도 같은 맥락.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모으면, 한 사람이 먹을 만한 양으로 찬다는 뜻이다. 여럿이 힘을 합하면, 못할 일이 없다. 코로나란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서민이 날로 늘어난다. 이런 상황에선 그들을 아낌없이 지원해야 하리라. 고난을 함께하며 챙겨주는 '개미'들도 수두룩한 터에, 하물며 정부에서 쥐꼬리만한 지원으로 생색을 내서야 쓰겠는가. 말로만 '복지'를 외치지 말아라.

온정을 내미는 손길은 그다지 화려한 수식어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하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복음 6:3~4). 선행을 습관으로 만들어 누가 보든 안 보든 상관없이 늘 하라는 의미일 게다. 좋은 일일지라도 하고 나서 낯을 드러내면, 그 선행은 반감되기 마련이다. 남을 도울 때는 모른 척해야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예수는 남에게 좋은 평판을 얻으려고 친절한 행위를 벌이는 자칭 '정의로운 자'를 비판했다.

노자의 말씀도 한번 들어보자. 장욕흡지 필고장지(將欲歙之, 必固張之)… 유약승강강 어불가탈어연(柔弱勝剛强, 魚不可脫於淵) <도덕경> 36장. 거둬들이려고 하면 반드시 베풀어야 하고, 장차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강해야 한다. 부드럽고 약한 게 단단하고 강한 걸 이기고, 물고기는 연못을 벗어날 수 없다. 무엇을 얻으려면 먼저 내주는 법을 깨달아야 하고, 상대를 이기려면 상대편이 잘 되게끔 해줘야 마땅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지혜로운 삶을 위한 경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와 사회가 어려움을 겪을 때, 많이 배우고 똑똑한 인사가 아니라 그늘진 곳에서 분투하는 보통사람들이 늘 위기를 극복해 왔다. 세상은 이제 잘났다고 자처하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결코 특별하지 않은 이들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를 살고 있다. 수많은 예사로운 사람이 세태 변화를 읽고 앞장서고 있음을 안다.

새해에도 코로나19로 지구촌은 바람 잘 날 없을 듯하다. 코로나로 인해 서로 기피하며 고통을 받는 이들도 여전하리라. 이럴 때일수록 이웃을 돌아보며 보듬는 사랑이 요구된다. 슬픔은 나누면 절반으로 줄고, 기쁨은 나누면 배로 커진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쪼록 올해는 평범한 국민이 함께 웃으며 희망을 건져 올렸으면 좋겠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