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삼성전자 해외 영업맨
소니와 아이폰 역전 과정 등
안 알려진 현장 이야기 담아

“10대 결함에 3000대 다 교체
과감한 결단, 신뢰 쌓여 성장”
▲ 위기인가? 삼성하라!, 윤성혁 지음, 봄빛서원, 322쪽, 1만7000원

'삼성전자의 임원들은 어떻게 임원이 됐고, 어떻게 일을 할까'라고 한 번쯤 궁금했던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1989년에 삼성전자에 입사해 2020년 전무로 퇴사할 때까지 32년간 삼성전자의 해외 영업을 담당한 저자 윤성혁(60)은 3차례에 걸쳐 16년간 미국 주재원으로 근무하며 IBM, 베스트바이, AT&T를 담당했고, 4년간 남아공 법인장과 아프리카 총괄을 겸임했다.

이 책에는 미국의 전자제품 전문판매점인 베스트바이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삼성 TV가 2006년 마침내 소니를 제치고 세계 1등이 되는 과정과 아이폰을 독점판매하던 AT&T에 삼성 휴대전화기가 아이폰을 능가하는 판매 실적을 올리는 과정 등 저자가 영업 담당자로서 직접 경험했던 생생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런 성공담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사운을 건 대형계약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삼성과 영업사원인 저자가 맞닥뜨린 위기를 돌파하는 과정이다.

그중 하나는 2003년 미국의 대형 투자회사인 피델리티사에 1만달러짜리 18인치 LCD 모니터 3000대를 3000만 달러에 독점 공급한 후 10여 대의 모니터에 미세한 점과 얼룩이 발생하는 결함이 생기자 3000대 전량을 교체한 사건이다. 당시 경영진은 10여 대에 불과한 모니터 결함이지만, 3000만 달러라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미래에 잠재적 불량 가능성이 있는 멀쩡한 제품까지 전량 교체하는 과감하고 신속한 결정을 내렸다. 언론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사건으로 거래처의 신뢰를 쌓은 덕분에 삼성은 모니터 업계가 놀랄 정도로 최고의 위치에 오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 <위기인가? 삼성하라!>는 삼성 제품이 미국 판매 매장에서 전시되지 못하고 창고에 있을 때부터 세계 초일류 브랜드가 되기까지 현장에서 발로 뛴 32년 삼성전자 영업맨이 쓴 책이다. 아이폰과 소니 등 수많은 경쟁사를 뛰어넘고 세계 시장을 개척하며, 영업의 한 축을 담당한 저자의 100여 개 실전 성공 사례가 풍부하다. 사진은 CES 2022가 열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의 삼성전자 전시관에서 삼성전자 모델들이 LED 사이니지 월을 이용한 미디어 월을 선보이고 있다./연합뉴스
▲ <위기인가? 삼성하라!>는 삼성 제품이 미국 판매 매장에서 전시되지 못하고 창고에 있을 때부터 세계 초일류 브랜드가 되기까지 현장에서 발로 뛴 32년 삼성전자 영업맨이 쓴 책이다. 아이폰과 소니 등 수많은 경쟁사를 뛰어넘고 세계 시장을 개척하며, 영업의 한 축을 담당한 저자의 100여 개 실전 성공 사례가 풍부하다. 사진은 CES 2022가 열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의 삼성전자 전시관에서 삼성전자 모델들이 LED 사이니지 월을 이용한 미디어 월을 선보이고 있다./연합뉴스

저자가 IBM과 베스트바이 영업 담당을 하면서 단순한 거래처가 아니라 상호협력을 통해 판매물량을 예측하고 재고 물량 보충 계획을 함께 세우는 업그레이드 된 파트너십을 맺는 과정도 눈여겨 볼만하다.

“삼성 플라스마 42인치 TV는 지난주 850대 판매됐고, 지난 3일간 150대 판매된 추세를 보면 이번 주에는 550대 판매가 예상됩니다. 당초 목표였던 900대에는 훨씬 못 미치는데, 즉시 추가 프로모션 대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이처럼 저자가 베스트바이의 제품별 공급망 관리 회의에 참석해 얻은 정보는 곧바로 한국 본사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이를 토대로 빠르게 대응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임원의 직위까지 오른 삼성맨은 예상대로 워크홀릭이었다.

한 해에 비행기 조종사도 울고 갈 20만 마일의 항공 마일리지를 기록했고, 가족 여행은 번번이 일에 밀려 취소되곤 했다. 2002년 이탈리아와 월드컵 8강 전이 열리는 시간에는 IBM과 LCD 모니터 협상 중이었고, 마스터스 대회 공식 스폰서인 AT&T가 보낸 마스터스 초대권을 갤럭시 S4 출시 일정 때문에 두 번씩이나 거절했다.

삼성과 삼성맨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인쇄 전액은 넬슨 만델라 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

/장세원 기자 seawon80@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