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시 세종대왕면이 2021년 12월31일자로 개명절차를 마쳤다. 임인년부터 능서면이라는 기존 이름은 옛 지명이 되었다. 2015년 무렵부터 이어졌던 개명 진통도 이로써 일단락되었다. 수도권 전철 경강선을 타고 이천 부발역을 지나 '세종대왕릉역'에 내리면 이제는 명실공히 세종대왕면이다.

딱 1년 전인 2021년 1월1일 강원도 양구군 남면이 국토정중앙면으로 이름을 바꾼 선례가 있다. 국립지리원이 공식으로 인정한 바에 따르면 '호랑이 형상' 한반도의 정중앙이 양구군 남면 도촌리 산48번지다. 남면 사람들은 이에 착안해 면 이름 자체를 국토정중앙면으로 새출발했다. 도촌리는 '배꼽마을'이 되었다.

다섯 글자여서 귀에 설기는 하나, 남면보다는 국토정중앙이 한결 나아 보인다. 지명에 동서남북 방위를 갖다 붙이는 작명법은 해당 지역이 독자적 매력은 없고, 인근 중심의 어느 쪽에 있다는 표시에 불과하다. '국토정중앙'이라는 호칭에서 중심부-주변부라는 익숙한 프레임보다는, 지리적 자부심을 정체성으로 재설정하려는 마음이 먼저 짚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능서면 역시 세종대왕릉인 '영릉(英陵)'의 서쪽이라는 의미다. 원래 여주군 수계면과 길천면 이었으나 조선총독부가 1914년 두 면을 합병한 뒤 능서면이라 칭했다. 세종대왕과 소헌황후를 합장한 능과 효종과 인선황후의 쌍릉인 '영릉(寧陵)'이 왕대리에 있다. 조선 왕조 으뜸 임금의 능 서쪽이라는 의미도 무시할 수 없지만, 어쩐지 밋밋하다.

2015년 면 이름을 바꾸자는 공론이 일자 찬반양론이 분분했다. 세종대왕릉면, 세종대왕면, 영릉면, 명품면 등등의 의견이 나왔다. 세종대왕을 면 명칭에 쓰는 걸 반대한 입장에서는 세종 임금의 명성이 한갓 면의 이름으로 축소되는 걸 꺼렸다.

먼저 이름을 바꾼 것은 경강선 능서역이다. 국토교통부가 주민 여론에 따랐다며 2016년 4월 능서역을 영릉역으로 바꾸어 고시했으나, 주민 반발이 일자 재차 설문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가 '세종대왕릉역'이다.

하지만 역명만 바뀌었을 뿐, 지명은 5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2016년 여주시의회는 능서면의 명칭변경안을 부결시켰다. 반대 의견이 더 많다는 이유였다. 세월이 흘러 2021년 12월 여주시의회는 이번엔 세종대왕면 변경을 의결했다. 해마다 봄가을로 세종대왕숭모제전과 세종문화큰잔치가 열리는 지역답게 세종대왕을 명토 박아 앞세우기를 원하는 주민이 더 많아졌기 때문일 게다.

이름바꾸기는 새출발을 드러내는 강력한 수단이다. 귀에 익은 능서면을 여전히 더 선호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산뜻하게 새 해 맞도록 세종께서 굽어살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다를 리 없을 터이다.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