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혁신 논설위원
▲ 조혁신 논설위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주인공 기택 일가가 거주하는 곳은 지하 셋방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인데, 이 영화 덕에 우리나라 지하 주거 양식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치르게 됐다. 어두컴컴하고 곰팡이가 덕지덕지 핀 지하 셋방은 '기생충'이 서식하기에 어울리는 양극단의 시대를 총체화한 미장센인 듯싶다.

지난 연말께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지하(반지하 포함) 주택은 2010년부터 지금까지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추세와는 달리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하 거주 가구가 늘어난 도시가 있다. 바로 인천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인천의 지하 거주 가구는 2015년 2만1000가구에서 지난해 2만4000가구로 늘었다. 가구 형태별 지하 비율도 2015년 2.0%에서 2.1%로 늘었다. 지하 거주 비율은 서울 5.0%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았다. 인천 등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지하 거주 비율이 최대 0.2%에 불과하니 인천은 지하 거주 도시라는 오명을 뒤집어써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인천의 지하 거주 가구가 늘었다는 소식을 접하니, 고 강태열 시인의 지하 셋방이 떠오른다. 강태열 시인은 전남 광주 출신이나 1993년부터 2011년 작고하기까지 인천 부평구 산곡동 지하 빌라에 칩거하면서 시를 썼다. 등단 50년 만에 낸 첫 시집 <뒷창>과 시집 <우주영가> 원고도 산곡동 지하 셋방에서 최종 탈고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시인이었는지는 1952년 광주고 재학시절 박봉우, 윤삼하, 주명영과 공동시집 <상록집>, 1953년 동인지<영도>를 펴낸 걸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유신정권에 반대 투쟁을 했던 강골이자, 사재를 털어 윤삼하 시인의 유고 산문집을 발간하고 천상병 시인이 찻집 '귀천'을 여는 데 도움을 준 휴머니스트이기도 했다. 정작 자신은 빛 한줄기 제대로 들지 않은 지하 셋방에서 살면서 말이다. 새해 인사차 시인의 지하 혈거를 방문해 세배를 드렸더니 필자에게 “큰 글을 쓰는 대설가가 되라”는 덕담을 해주셨던 기억이 여태껏 남아 있다.

“세상에 대해 하는 욕인데/듣는 사람은 언제나/아내뿐이다/육십이 다 된 아내와/육십이 넘은 내가/밥을 먹다가도/개씨파랄!/숟가락 놓는 아내와/밖으로 나가는 나/이제 육십이 다 된 아내와/칠십이 다 된 난데/아내는 남의 식당 식모로/나가 살고/나는 실직자라 혼자 산다/아내는 욕을 안 먹으니/편하다고 하고/나는 없으니까 없으니까/편하다 한다”( 시 '욕쟁이' 전문)

시인은 자신의 지하살이에 대해 일절 불평 한번 안 했지만, 살아계셨다면 지하살이가 느는 세상을 통탄하며 “개씨파랄!”하고 욕 한마디를 던졌으리라.

/조혁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