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해 지지를 얻으려 하는 '감성 정치'가 본격적으로 짙어졌던 때는 2000년대 후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대권에 도전하는 첫 대중 연설에서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로 눈물을 흘린 적 있다.

“부모의 학대에서 벗어나려고 14살 때 가출한 저의 어머니는 가정부 일을 하며 일주일에 겨우 3달러를 벌었어요. 아버지와 결혼한 후 저를 변호사로 키우느라 뒷바라지를 한 훌륭한 어머니죠. 여러분들은 나의 어머니와 같은 '평범한 미국인' 입니다. 당신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해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감성 정치인 대열에서 은근 선두주자였다.

총기규제 행정명령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숨진 초등학교 학생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울음을 터뜨렸고 환한 미소로 아기를 들어 올리는 사진을 공개하는 등 마음을 울리는 방식을 종종 택했다.

냉혈 쪽에 가까워 보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역시 지지율이 떨어지거나 정치적 위기일 때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곤 했다. 꽃향기를 맡거나 온화한 표정으로 개를 끌어안는 연출을 했다.

우리나라에선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국회의원이 자주 이런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영선 후보 유세를 하던 때다. 파란색 박 후보 유세 점퍼를 입은 채 책상에 엎드려 쉬고 있는 사진을 게시하며 “오늘 오전 골목길을 유세차와 발걸음으로 누비고 다녔다. 선거운동 5일 차, 목소리는 쉬었지만 몸과 마음은 쉬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유세 중 빗속에서 한 여성과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사진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SNS에 “저를 꼭 안아주셨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서인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분도 저도 빗속에서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적었다.

정치인의 이런 접근방식은 대중에게 진심을 전달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해 의외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패해 오히려 부작용이 나는 경우도 많다. 심금을 울리겠다는 노골적인 의도를 가지고 유치하고 부자연스러운 작위를 만들었을 때 보통 그렇다. '감성팔이'라는 비아냥을 듣기 일쑤다.

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 배우자의 기자회견이 대표 사례 아닌가 싶다.

“남편을 처음 만난 날…”로 시작하는 김건희 씨의 회견을 통해 우리는 난데없는 그의 순애보를 알게 되고야 말았다.

허위이거나 부풀려진 경력·이력으로 성실한 누군가의 직장을 꿰찬 것 아닌지에 대한 의혹을 해명하거나 사과하길 기대했는데 대신 그가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고 애틋해 하는지, 부부 사이 무슨 일이 있었고 그 일로 얼마나 남편에게 미안한지와 같은 신파만 존재했다.

구구절절한 입장문 중 잘못을 언급한 대목이 “잘 보이려고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습니다”로 단 한 문장이었다.

적나라하게 감성적으로 접근하려 한 윤석열 캠프의 이번 정치는 완벽하게 부적절했을 뿐 아니라 어떤 현안에 대해 국민이 해소하길 바라는 정곡에도 한참 비껴간 판단이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김 씨의 사과와 해명이 부족했다는 의견이 69.3%지만 충분했다는 답변은 22.0%에 그쳤다. 윤석열의 지지도는 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정치인의 어떠함과 인물의 철학을 마음으로 헤아렸을 때 느끼는 감동이 단단한 지지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감성 정치에 대한 유혹은 언제나 도사리겠으나 이렇게 공감의 과정을 생략한 채 일방으로 퍼부어대는 그것은 정치인 당사자나 유권자 모두에게 독이 될 수 있다. 신물이 나고 기분만 나쁘다.

누군가 김 씨의 사과문에 사랑 고백 유행가인 신승훈 '아이 빌리브(I believe)'를 덧입힌 영상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조롱하듯 퍼지는 이유도 아마 그럴 것이다.

 

/장지혜 문화체육부장